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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Jul 22. 2022

그녀의 스리랑카에 봄날이 오길

며칠 전에 스리랑카 여인, 누자가 자기 집에서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 일전에 우리 집에 두어 번 와서 점심을 하고부터 서로 가까워졌다. 나이가 나보다 스무 살 어린데도 가끔 문자로 안부를 묻는 외국인 친구는 누자 뿐이다. 영어교실에서 만나 온 브라질, 니콰라과, 태국, 중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온 어린 친구들에게는  꽤 선의를 했다고 생각되는데 다들 감감무소식인 반면, 유일하게 안부를 물어오는 누자에게서 더 진심과 성심이 느껴지고 고맙기 그지없는 건 인지상정이던가. 더구나 난 그녀에게는 선의를 베푼 적도 없으니.


우리 집 가까이로 이사를 한 누자네 집은  세련된 인테리어로 나를 맞이했다. 특히 72인치라는 커다란 텔레비전을 난 그날 처음 봤다. 거실에서는 드넓은 들판이 훤히 보였다. 아침나절에는 그곳으로 캥거루 가족들이 밥 먹으러 온단다. 가든에는 우리 집에서  꺾어 간  제라늄이 자라서  빨강과 분홍꽃을 활짝 달고 있었다. 꽃도 잘 키우는 그녀가 더욱 대견했다.


전주인이 키워놓았다면서 그녀는 호박이 익어가는 호박넝쿨을 보여주었는데, 나는 싱싱하게 푸른 호박잎 앞에서 침을 삼켰다. 평택 과수원에서 주말마다 가족이  앉아서 한 소쿠리 가득  쪄서 쌈장을 올려 먹던 그 꿀맛이 여기 있다니, 난 하마터면 반가움에 한국말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머나 호박잎이네! 하고 말이다.

나의 그토록 향수 어린 호박잎까지 그녀가 따줬으니,  그녀가 얼마나 센스 있게 느껴지던지. 그날 저녁에 한 보따리 따 온 그 잎들을 바로 쪄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다 해치웠다.


11시 반에 갔는데, 그녀는 먼저 커피를 내려서 케이크랑 정갈하게 내 왔다. 난 이게 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스리랑카 음식을 차려내었다. 스리랑카 사람들도 매운 걸 좋아한다면서 대여섯 가지나 되는 매운 향신료가 든 작은 유리병들을 보여주었다. 자잘한 스리랑카 쌀로 밥을 지어 온갖 양념을 다 뿌리고, 재스민 쌀에는 카레 색깔로 맛을 더했다. 자기 나라 양념이 배인 닭고기, 그리고 정신과 의사라는 그녀의 남편이 전날 일을 마치고 장을 봐 왔다는 오이와 배추를 잘게 썰어 만든 샐러드. 모두 상큼하고 맛있어서 나는 몇 접시 더 먹었다. 그리고도 3차로 그녀가 손수 만든 요트와 과일까지 먹었으니!


누자가 차려낸 점심 상차림


아참, 하나 빠졌다.

명색이 자기 나라에서 10년 간 의사를 했다는 그녀는 손으로 식사를 했다. 사실 난 그 자리에서 그것에는 관심을 크게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녀는 자기 나라의 문화를 나에게  고스란히 소개해주고 싶어서 그랬으나,  손으로 밥을 먹는 그녀가 어쩐지 좀 어색했다. 아니 꽤 많이 어색했다. 오른손의 엄지, 중지 그리고 검지로 밥을 꼭꼭 눌러 그 위에 반찬을 어 먹는 그녀의 천진한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다. 영어교실에 올 때마다 우아한 옷차림과  교양미가 몸에 밴 그녀의, 뜻밖의 식사문화. 그녀가 손으로 밥을 먹는다니. 그래서 오른손을 아낀다던 그녀 나라, 스리랑카 식사 문화를 난 오늘, 간신히 간접 체험했다.


 집에 와서도 그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가감 없이 정성을 다 해 보여주던 솔직 담백하고 순수한 그녀의 태도가 좋아지고 있었다. 그건 내게 감동으로 변하서, 나 자신을 향해 물어본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고.

포크를 곁에 두고도 손으로 식사를 하는, 자기 나라의 문화를 녀만큼이나 뜻, 외국인 친구에게 소개할 수 있었을까.  서너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 중간중간에 자기 나라의 어려워진 경제를 심으로 염려하던 그녀가 더 참신하고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내 음이 녀에게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의 고국, 스리랑카에 얼른 따스한 봄 같은 날이 오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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