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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Sep 05. 2022

그 집 앞을 지날 때  와닿는 기억


그녀는 9년 전 호주에 온 태국녀다.


영어교실에서 만난 그녀는 자동차를 바꿔가며  학교에 오곤 했다. 하나는 아우디 하얀 세단이었고 하나는  SUV 벤츠였다. 얼굴이 가무잡잡한 그녀는 순하고 잘 웃고 영어도 잘 알아듣는 참한 급우였다.

가방끈은 짧았는지 읽기와 쓰기는 듣기와 말하기에 비해 실력이 확 떨어졌다.

여기엔 그런 사람이 꽤 있다. 주로 호주 남자와 결혼하여 사는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에서 온 여인들의 삶의 특성상, 24시간 집에서 한국말만 하는 나보다 영어의 리스닝과 스피킹 실력이 월등히 좋다. 그들은 24시간 365일을 영어로 사니까. 쨌든, 우리가 동양인이라는 공통분모만으로도 훈수 들 마음을 유발한다.



텀 방학을 하 어느 날 예닐곱 명의 급우들이 수업을 마친 후 커피 시러 우리 집에 다 간 날이 있었다. 그녀와 몇몇 급우들은 돌아갈 때 나의 뜰에서 다육이와 제라늄 몇 를 자기 뜰에 심는다며 따 갔다.

며칠 후, 필리핀에서 온 젊은 그녀, 마리아는 고추 색깔이 대여섯 가지로 변하는 레인보우 칠리를 키워보라며 가져다주었 지금도 나의 화분에서 씩씩하게 잘 자란다.



그리고 태국 그녀는
어느 오전에 전화를 했다.



나는 그때  U3A  문화교실에 있었다. 우리 집이 자기 집에서 10분 거리밖에 안 된다며 혹시 점심 식사하러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생각해보니 오후에 특별한 일도 없길래, 오 케이, 하고 사과와 수박과 망고를 들고 갔다.

 그녀가 사는 버넷 해드 비치는 내가 가끔 산책을 하는 곳이어서 쉽게 찾을 줄 알는데 네비를 봐도 길치인 나는 뱅뱅 돌면서 같은 길을 헤매느라 2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먼저 그녀를 따라 연한 연두색 벽 2층  가의 가구로 가지런히 정리된 내부를 둘러았다. 그리고  기다리느라 배고파 죽겠다는 그녀 둘이서 태국식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그녀는 50대 중반이고 그녀 백인 남편은 60 반이라 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대던 그에게서 조용하고 세심함이 느껴졌다. 기차를 운전하다가 퇴직하고 3년 전 이 바닷가로 와서 집을 지었다. 그들의 정원엔 그가 길러놓은 이름도 모 온갖 기화요초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원도 어디 한 군데 빠진 게 없이 가꾼 솜씨가 완벽했다.


그뿐인가.



집 앞에는 카라이 보라는 듯 세워져 있었다. 내일모레 낚시하러 그걸 타고 며칠간 여행을 떠날 거라 했다. 뒤뜰 창고에는 오토바이 렉터인 그를 대변하듯 3대의 오토바이가 반질거리며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서 있었다. 백인 그는 아내의 면을 세워주려 함인지 오토바이를 자랑하며 태워줄까 물었 난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나를 준다며 동양란 한 대와 박초이 서너 포기를 뽑아 비닐봉지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집 앞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알고 보니 거긴 내가 딸과 함께 가끔 와서 산책하길이었다. 

그녀는 10여 년 전 태국에서 경찰관던 남편을 암으로 잃고, 몇 년  자기 나라에서 만난 이 백인 남편을 따라왔고, 태국에 아들 딸이 살고 있다.

지금  남편이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힘들다고 했다. 그가 자주 화를 낸다. 그렇다 해도 서로 대화가 원활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 땐 큰소리로 크게 다툰다고 한다. 매번 봐주기만 하는 것보다 가끔은 다투기라도 해야 그녀도 살고 남편도 병 낫는데 효과적이라고. 그녀와시간을 함께 보낸 이후로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갈길이 남았다고 한다.

난 나보다 나이가 어린 그녀가 퍽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호주 사람이나 태국 사람이나 또, 한국사람들이나 다, 살아가는 면모는 어쩔 수 없이 닮은꼴 느껴졌다. 한편으론 이역만리에서 마음 힘들 그녀가 짠했다.

그 후 그녀가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만난 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오늘도 난 딸과 함께  저만치 서 있는
그녀의 집 앞 해변가를 따라 걸었다.




풍경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집이 있으니, 대양인 태평양을 코앞에서 맘껏 바라볼 수 있고, 보아하니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것 같고, 참하기만 한 동양인 여인과 여행도 즐기고, 취미활동도 남부러울 것 없이 한다는 그녀 백인 남편에게 왜, 마음의 병이 왔을까.

녀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러 가지 궁금했지만 노크는  하고 그냥 지나쳐왔다.

동생 같은 그녀가 백인 남편과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마음이 한결 편해지면 좋겠다.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가만히, 마음속으로 그렇게 원하게 된다. 그녀가 마음에 걸린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 날 한 번, 그녀에게 전화를 해 봐야겠다. 혹시 시간 되냐고 물어봐야겠다. 우리 집에 불러서 비빔밥이라도 함께 해야겠다.


오늘은 저만치 보이는
그녀의 집을 찍어보았다.
내가 가던 길도 찍었다.
오늘따라 하늘이 더 푸르러서일까.

그녀 안부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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