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뜰의 땅값은 인구밀도높은 도시보다 헐값이니 뜰만들 때 집주인 마음 헐겁다. 시골 소시민, 뜰 평수정하는 데 도시 소시민보다 자유롭다. 뜰앞지나치던 사람들도 웬만한 시골집 뜰 구경하는 덴부담되지 않는다.
난다른 집 뜰을보며 내 뜰안의 꽃들이 자라게 될 내 뜰의 지도를 기획해볼때가 있다. 이렇게 시골에선뜰앞을 지나가던 나그네와 뜰이 서로 낯선 관계라도,불현듯 마주 보며 자연스레소통한다. 아무래도 담 높은 도심의 비싼 하우스라면 낯선 집뜰앞에서 오래, 마음 놓고 머물진 못한다.
나부터도 여기, 시골서는 골목길지나다가 뜰 예쁜집을 마주치면 한동안 멈춰 서서 그 집뜰 부담 없이 바라본다. 시드니 도심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집들 빽빽한 만큼타인의 뜰 앞에 선나그네마음은어쩐지 여유롭지 못하고 경직되었었다고나 할까.
아직빈 터가 여기저기남아있는 여기 시골 동네빈 터만큼이나 마음에도빈 터가 허용된다.여기 들꽃으로 채워진 빈터에서 내 유년의 들꽃을소환한다. 오가는 차들도 그리 붐비지 않으니 뜰이 눈에 들어오는 집 앞에선 난 자동차를 멈추고 주인의 손길로 알뜰하게 가꾸어놓은 뜰안을 탐구해보는 날도 있다.
가령, 거베라꽃 기르기가 난 잘 안되던데, 자꾸 뿌리가 썩어 죽던데 이 집엔 예쁘게 잘 키웠네. 무슨 거름을 주었을까,하다가, 어떤 때는 주인이 뜰에 있으면 차에서 내려 서로의 뜰의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사람 귀한 시골인심이 뜰앞에서도 사람을 반갑게 맞아준다. 어떤 땐예닐곱 마리닭 가족들뜰흙을 파헤치며 모이쪼아 먹는이름 모를 뜰앞에서, 내 고향집기억을 길어 올린 날도 있었다.
때로는 해변로에서 대궐 같이 큰 집을 만날 때도 있다. 이 집은 정원수를 노련한 솜씨로 잘 다듬어 놓았네. 주인이 전문적인 가드너를 부를 수 있는 부를 지닌, 이 동네 갑부가 아닐까,하며 슬쩍 훔쳐보며 쓰윽지나칠 때도 있다.
나 혼자 남의 뜰을 지나치면서 온갖 상상을 해보면, 것도 하나의 재미다. 호주 하우스 특성상 울타리가 낮거나 집 앞에는 울타리가 없으니 나는 이 시골에 온 후부터는 마을을 산책하며그들의 뜰을 함께 느릿느릿 산책한다.
숙련된 솜씨로 완벽하게 가꾸어 놓은 뜰보다, 알뜰살뜰솜씨로 일궈놓은 뜰이 더 정겹게 다가온다.
마치 남의 집 아이를 바라보며 우리 집 아이의 세계를 상상하듯, 이곳 시골에서는 남의 집 뜰이 내게 아트갤러리처럼 관람하는 장소가 되었다.생생살아있는 작품을 맘껏 관람한다.작은 꽃이든 큰 꽃이든 흰꽃이든 분홍꽃이든 우월한 꽃이 없이 무조건 다 예뻐서 좋다. 꽃 앞에 오래 서 있다 보면 꽃이 말을 걸어온다. 꽃은 주름살과 주근깨 투성이인 나에게, 너도 항상 이쁜 사람이 될 수 있다, 고 말한다.
그래도 볼품은 없지만 내 손길이 오래 닿은 나의 뜰에 정이 가장 오래 머문다.
하얀 화분에서 수국이 가지마다 파릇한 봄눈을 달아 꽃을 피울 기지개를 켜고 있다.
들깨, 미나리, 배추, 사금치, 겨자채
다른 뜰을 보기 위해 일부러 보타닉가든이나 카페를 들리기도 한다.
문밖을 나서면 바로 허심탄회하게 만날 수 있는 뜰 풍경이 발길 닿는 데마다 있어서 난, 이 시골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