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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Jul 25. 2022

호주 할머니가 전해 준 책, 제주 해녀 이야기

 - The Island of the sea women  - 해녀들의 섬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목요일마다 가는  U3A라는 문화센터에서다. 난 그녀가  1년에 트로마 테디를 250개씩 뜨개질해서 20년간 적십자사에 보낸다는 적지 않은 두 숫자놀라 을 다물지 못했다. 나도 참여하고 싶다 하자, 오렌지파랑 털실뭉치에 대바늘까지 가져와서 종이에 써주면서 트로마 곰인형 뜨는 방법을 상세히 가르쳐주었다. 너무나 쉽게 가르쳐주어서 "혹시 예전에 선생이었어요?" 자, 30년 간 이스쿨 역사 선생으로 은퇴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사이는 뜨개질 반 첫 선생과 제자 사이특별한 관계로 마음을 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난 15개의 트로마 테디를 만들어 적십자에 갖다 드렸다. 얼마 안 되었고 서툰 솜씨였지만 내가 받은 선물보다 마음이 더 뿌듯했다. 이 두 개는 아프고 가난한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거실 잘 보이는 곳에 남겨두었다.


요즘은 그녀를 수요일과 목요일마다 일주일에 두 번 만난다. 가톨릭 교회에서 오픈된 수요 반은 이불, 모자, 목도리 같은 방한 용품을 뜨개질하여서 홈리스와 환우에게 보내는 자선 뜨개질 교실인데 35명의 할머니들이 참여하고 있다. 2011년부터 블링킷 바디스 Blanket Buddies 라는 이름으로 시작었다는, 이 모임이  만든 뜨개질의 소출이 적지 않다. 작년 한해 동안 1100개의 이불, 490개의 털모자, 120개의 목도리, 40개의 아기 카디건, 50개의 어린이 모자뿐 아니라, 몇 개의 장난감들도 분디 할머니들의 손끝에서 나왔다. 번다버그(분디 ) 로컬뿐 아니라 시드니,  태즈메이니아, 서호주 등 병원이나 구세군은 물론 호주 국내의 농장에도 보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7, 80대의 연령대이신 이 할머니들은 이 나라의 소중한 자원이다. 이 들의 손길로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따스한 이불속에서 편히 잠들 수 있게 되니.



며칠 전 교회주보에 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왼쪽  두번째 오렌지색 티셔츠 입은 사람이 벨이다.

이 반의 모든 할머니들이 다 친절하지만 벨의 적극성은 따라가지 못한다. 그녀는 나에게 보다 더 깊숙한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고 부담을 주는 건 아니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나눠 주려하니 그녀를 볼 때마다 푸근해진다.

몇 년 전 크루즈 일본 여행 때 잠깐 들렀 부산의 한 뮤직 박물관 고층빌딩 올라간 5000원짜리 티켓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루는 딸 이야기가 나와서 딸이 분디 타운의 한 약국에서 일한다고, 혹시 당신이 거기 가면 나의 딸이냐고 물어보라고 했더니, 한 달 만에 약국 볼일도 없으면서 일부러 방문해서 30초 간의 상견례(딸이 바빠서)서 걸걸한 목소리로 하하하 웃기도 했다. 의 말에 의하면 너의 엄마가 영어 단어는 엑설런트 수준인데, 발음이 좀 안 좋다고 하더란다. - 진실은, 내 발음의 거의 50%는 못 알아듣는 이 반 분디 할머니들이시니 좀이 아니라 많이 안 좋다. 그러나 우리는 마주 보고 이해하고 웃는 날의 연속이니 블링킷 바디스, 이불 같은 친구들이라는 이반의 이름이 무색치 않다.


그런 그녀가 일전에는 내게 책 이야기를 했다. 17년 동안 U3A 문화교실에서 회원들과 함께 읽은 책이 526권이며 작가가 269명이라 했다.  자리 숫자까지 기록한 그녀의 꼼꼼하게 적어나갔을 끈질긴 필기 습관과 독서의 끈기가 놀랍기도, 부럽기도 했다. 한때 글쓰기와 독서지도사 경력이 있는 나도 그만큼의 독서량 될 텐데, 리스트가 없으니 뜬구름처럼 내 머릿속을 배회하듯 떠다니기만 하 말이다.  


군가의 일생에서, 읽은 책의 리스트를 처음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만들고, 누군가를 위해 수십 년 동안 곰인형을 만들고, 누군가에게 선뜻 나서서 친구가 되어주는 일은 어떤 마음의 소유자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자신과 자식 말고 른 누군가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일은 다 마더 테레사 다이름일 게다. 그 이름들 사이에서, 앞으로 나의 이름은 어디 즈음에 놓일 수 있을지, 생각해보다.

 

여하튼, 벨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책은 제목이 The island of sea women이다. 우리나에서도 2019년도에 "해녀들의 섬"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책이다.  덕분에 번다버그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영문의 책을  92쪽까지 읽는 중이다. 영문의 내용을 세세히 다 이해할 수 없지만 1938년도부터 2008년까지의, 제주 해녀였던 영숙과 미자의 우정 어린 삶의 역사가 이토록 디테일하고 실감 나게 그린 작가, 리사 시 Lisa, See의 묘사력이 우리나라 국내 작가에 버금간다는 건 알겠다. 


내가 좋은 책을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하자 벨은 또 다른 읽을거리를 찾아본다며 답을 보내왔다.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열정이 많은 그녀, 다음엔 내게 뭘 갖고 올까.

호주에서 호주 할머니에게 전해 들은 제주 이야기를 읽으니 기분이 묘하다. 제주 해녀 할머니들의 애환이 국내에서 읽는 것보다 더욱 절실하고 생생하게 마음으로 파고든다. 그분들이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 기도하며 오늘도 나의 아지트인 베란다에서 그녀들을 읽는다. 그녀들의 숨, 숨비소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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