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말을알아듣지 못했고 그들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단어를 알아도 발음이 너무 아니면 내 말은 한순간에 미궁으로 빠져버렸으니. 그런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대화 중간중간 서로의 언어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던 때가 더 많았지.
가령엄마가 ferment를 perment로 발음하거나, 돌담을 rock wall이라 표현할 때도 그들은 내말을 퍼뜩알아듣지 못했어.집에 돌아와 돌담이 rock wall이 아니라 stone wall이라는 걸 알고 나면 내얼굴이 노을처럼 혼자 붉을 때도 있었단다. 저녁노을은 서산으로 숨기라도 하지. 그런 시간이 누적되면서 그들도, 어색한지 영어가 궁색한 내게 말을 잘 걸지 않았다.
내 입은 점점 박제가 되고 있었어.
2018년도인가. 엄마가 호주교회에조인해서 워킹 홀리데이 온 아시안 학생들한테 저녁밥지어주던 거 생각나니. 그때부터 내 입은 굳어있었어. 매주 화요일 저녁 6시에만들어 갔던 잡채, 떡볶이, 부침개 그리고 삶은 달걀들. 난 차라리 그것들을 교회 부엌에 두고 살짝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막상 가보면 설거지와테이블 세팅 같은,일손이 달려서 그 자리에 꾸역꾸역 남아 있어야 했다. 호주 현지인들 말, 거의 못 알아 들었으니, 내가 할 말도 없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어. 그렇다고 맘먹고자원한 일을 바로 포기할 용기도 없었다.
거의 1년을그들 무리 속에 참여하다가 빠져나올 기회가 왔다.생후 5개월 된 우리 재영이 돌보러 시드니로 훌쩍 날아간 날은 홀가분했다. 가엾었던 나의 영어가이제 현지인 속에 섞여 안 떨어도 됐던 그 가뿐함이란!
2년 정도 됐나.
테잎Tafe 이라는 이곳 영어교실에 다녔던 거. 온갖 나라 사람들이 모여 영어를 배울 때, 그땐 내가 좀 우쭐했었다. 담임이던 말리사 선생이 내가 일반상식을 두루두루 많이꿰고 있고, 영어문법은 도통했다고, 수업시간에 학생들 앞에서자주 말하곤 해서 말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들의 상식과 문법이 딸려서 말리사 선생이 그렇게 뛰워준건데.
어쨌든 나는 2년 동안 다니던 영어교실을 박차고 나왔지. 이곳 현지인이 모이는U3A라는 바느질 교실과블링킷 버디스라는 자선 교실에서 뜨개질을 하고 프랑스 자수를 놓기로 했지. 30여 명의 회원들 속 1인이 된 이모임도 벌써어언2년 되었고, 블랭킷 바디스는 1년이 되어간다.
딸들아, 어느 날 너희 둘이 나한테 말했다. "우리 엄마 참 대단하다"라고.
그래, 6학년 초인 엄마가 용감무쌍? 하게 그들, 호주 현지인들의 노랑머리 무리 속으로까망 머리를 들이밀어 넣고,겨우 눈만 뜬 서툰 영어로 그들에게 뜨개질을 배우며 서로 웃고 떠들며 섞여있다 보니, 이젠 그들의 말도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언어가 서로 통하니 마음도 조금조금 서로에게 젖어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말은 다 통하지 않아도 맘은 편해졌다. 동서양 사람들은 성격이 생판 다른 줄로만 알았는데 이들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가 교차되는 것도 많았다. 물론턱없이 다른 것도 많지.
여기 사람들 우리를 이해 못 하는 것 중 하나는 제사상 차려놓고 돌아가신 조상님께 큰 절 올리는 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일 거야. 장례식 때 시체를 관에 넣어놓고 만지고 입 맞추며 이별하는 거.
바로 옆집에 맥주 마시러 갈 때 자기 비어가 담긴 컵을 들고 가는 것도, 난 이해 안 되긴 하더라. 그런 모든 것이 이해는 다 안 되더라도, 신문물 접하듯 내게 다 소중하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이란다. 다른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의 문화와 나 자신을 한 번 돌아볼 기회도 얻고.
엄마가 브리즈번이나 시드니에서 살 땐 한국어로 글을 쓰고, 한국 친구들만 만났었으니 영어가 필요 없었지만, 여기는 호주 시골이니까 아무래도 한국인도 많지 않아 영어 배우기엔 안성맞춤인 것 같다. 새로운 세상으로 편입해보는 이 일이, 나의 인생에서 마지막 도전이 될 것도 같다.
물론 현지인들하고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해서는 영어가 안 늘더라. 먼저 우리말로 가르치는 유튜브 영어를 열심히 들어야겠더구나. 영어로 된 책도 틈틈이 읽고 말이야.
다른 좋은 채널도 있겠지만, 엄마가 구독해놓고 시간 날 때마다 듣는 영어 채널은 빨간 모자 선생님이야. 라이브 아카데미 신용하 선생의 채널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
똑같은 영어문장을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하여 입에 붙도록 외워놔야 호주 사람들 만났을 때, 스피킹으로, 겨우라도 써먹을 수 있더구나.
딸들아, 엄마 이러다 한국말 잊어버리면 어떡해?
그럴 일 없다고?
하긴, 브런치 글을 업로드하는 한, 한국말 잊을 일은 없긴 하겠구나.
하하.
베란다에 앉아 브런치 글을 쓰고 있는데 정원 버드 베쓰에 새 한 마리 포르르 날아와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