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는,
NSW 주와 QLD 주 사이를
비롯한, 호주 국내 각 주 사이의 문을
닫고 말았다.
우린,
갇혀야 했다.
다행이었을까. 난 그 문이 닫히기 하루 전날 귀가했다. 2020년 3월 10일 두 돌이 두 달 지난 재영이와 헤어져 NSW 주를 떠나 QLD 주의 번다버그로 돌아왔으니 운이 좋긴 했다. 주의 경계선에서 되돌아 간 사람도 많았다니, 하마터면 또 다른 1년 반을 넘기도록 딸네 집에 갇힐? 뻔했으니까.
그날부터 NSW 주의 시드니 딸을 2021년 12월 14일까지 2년이 다 되도록 만나지 못했었다. 그러다 외손주 재영이 재윤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자가격리 법이 쪼끔 느슨해진 틈을 타 얼른 국내선 티켙을 끊었다. 행여, 불현듯, 또다시 팬데믹이 성해져서 14일 간 내 돈 내고 호텔 격리를 강행할 지라도, 작년 크리스마스는 기필코, 큰 딸네와 보내고 싶었기에 작정을 하고 2주 간의 리턴 표를 예약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닿았던 곳, 같은 호주땅에 있던 내 딸의 유닛. 코로나 19 때문에 탈이 많고 절차가 꽤나 번거로웠지만 꾹꾹 참고 따랐다. 그러나 결국은 멀고 먼 여정의 금쪽같던 2일을 앞당겨 돌아와야 했었으니. 그토록 벼르던 크리스마스는 딸과 사위와 외손주들과 함께 보내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으니.
무섭기가 전쟁 같은 전염병 통에 그래도 딸과 사위와 두 강아지와 열흘 남짓 동안, 한 장소에서 한 솥밥 먹으며 알콩달콩 지냈으니 그것으로 흡족해야만 했다. 돌아오는 날은 남북 이산가족 이별인 양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었지만 그간의 회포는 그래도 눈물 한 방울만큼은 푼 셈이니까.
그러다,
외손주 재영이 재윤이가
올 4월 부활절 날 외가에 왔다. 2019년 12월 후 처음으로.
난 4시간을 운전하여 브리즈번으로 마중을 나갔다. 여전히 무서운 코로나, 두 아가들의 안전을 위해, 재영에미는 덜 붐비는 새벽 6시 비행기를 타고 오니 브리즈번 도착은 아침 7시 40분. 둘째 딸은 국내선 주변을 검색하여 그 전날 지 엄마가 묵을 숙소를 예약해주었다. 운 좋게도 비행기가 잘 보이는 방이었다. 행여나 밤새 비행기가 다른 데로 날아가버릴까 봐 손주들 오면 보여주려고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다. 찰칵찰칵찰칵.
초새벽부터 일어나 외손주들이 먹을 만한 음식을 테이블에 잔뜩 진열해놓았다. 그런데 그간 못 만났던 2년 반이라는 시간은, 이 외할미가 외손주들에게 적합한 음식을 잘 인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그저 나 나름대로 한 상 차려놓고, 공항으로 마중 나가, 쪼막만 한 마스크까지 끼고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 우리 두 토끼들을 숙소로 픽업해왔다.
6개월 때 나랑 떨어져 두 살 반이 된 재윤이는 엄마 껌딱지가 되어 있었고, 4살 3개월이 된 재영이는 내가 등을 들이대자 냉큼 업혀서 엉덩이를 덩실덩실 하였다. 외할미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허리가 아프면서도 좋았다. 아직은 그 아픈 건 반가운 데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숙소에서 아가들을 한 숨 돌리게 한 후, 또 4시간을 운전하여 쉬엄쉬엄 달려왔다. 재영에미도 고단한 여행이었겠지만, 새벽 2시부터 일어나 제 엄마를 강아지처럼 따라다녔다는 동생 재윤이, 고 어린 강아지는 얼마나 더 고단하였을까. 외할미 집에 오자마자 설사에다 토사에다 힘이 쭉쭉 빠지면서 난리가 아니다. 이틀째 날은 형아 재영이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3일째는 나의 두 딸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비실거렸다.
새끼들을 오랜만에 만나니 기쁨만으로 충만해서였을까, 아님 내 몸이 나도 모르게 너무 긴장해서였을까, 중늙은이인 나만 아직은 멀쩡했다.
큰딸이 오기 전에 작은딸과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로 강으로 나들이 가자던 계획은 고사하고, 아픈 아가들 약 먹이고, 토사물 닦고, 그 와중에도 밥은 먹이고, 코비드까지 체크해야 했으니 한마디로 나흘 간을 난민처럼 보내다가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도 하루씩만 아파서 다행이긴 했지만 다 같이 편하게 놀지 못하여 못내 우리들 모두가 아쉬워했다.
난 토끼들 온다고 열흘 전부터 애들 좋아하는 온갖 고기반찬, 국, 찜, 전과 잡채요리로 냉장고를 꽉꽉 채워놨는데 반찬도 울고 있었다. 그걸 눈치챘는지 사위는 올 12월 휴가 때는 꼭 애들 데리고 올 거라고 전화할 때마다 이야기하는데, 시간은 우리를 또 어디로 데리고 갈는지.
그간 훌쩍 자란 재영인 어린이가 되어있었다. 영어로 You, 이걸 무조건 너,라고 했다. 외할미도, 엄마도, 이모도, 그리고 지아빠도 다 재영이에게는 너, 로 통한다.
재윤이도 돌아가는 길에 마카다미아 농장에 들러서 마카다미아 쉘을 조준하는 데 재밌었는지 아주 열심이었다. 그간 두 놈 다 많이 컸다.
바로, 이렇게!
오랜만의 해후로,
반기던 시간이 지나가고,
또 하나의 시간이 마음을 타고
오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가다 보면 그 시간에 닿을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