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개인 건강보험 혜택 또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니 약 짓는 일도 더 분주해진다는, 지난달에 헤어지면서 둘째 딸의 그 소리가 짠하게 어미의 심장을 건드렸더랬다. 평소에도 분주한 직장인데 거기서 더 바쁘면 내 자식의 몸이 얼마나 더 고단할까, 하고 맘이 쓰여왔다.
무엇보다 어느 날은 저녁 9시까지 일을 마감하고 혼자 밤길을쓸쓸히 귀가할 딸을 생각하면, 자꾸만 어미 마음이 그리로 향하곤 해왔다. 더 중요한 건 연말 분위기라 행여 마약을 한,비보통의 사람이라도 밤중 외길에서 맞닥뜨리게 될까 봐 걱정도 되었다. 곁에서 밥이라도 챙겨주고,말벗도 되어주고, 저녁에 픽업이라도 해줘야겠다는 어미로서의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 이럴 땐 어미 몸이 두 개로 분절되는 묘기를 지녔다면 좋을 것을.
그래 우여곡절 궁리 끝에 큰딸이 아가들을 데리고 다시 아가들 외가로 따라나선 거다. 한 달 전 외가에 다녀온 후로 재영이가 가끔 이모, 이모, 하며 이모가 보고 싶다는 표정으로 울먹인 이유도 결정타에 한 점 보탰으리.
큰딸도 제 살림이 있으니 집 떠나기에 앞서 이것저것 처리할 게 많았다. 재윤이가 태어나던 시기에, 병원균에 감염된 한 직원이 그 병원에 있었다며 신생아에게 전염될 수도 있으니, 재윤이가 생후 3개월 되는 때에 내원하여 검사를 받아보라고 병원에서 연락이 온 게 12. 10일로 예약되어 있었다.
재윤에미가 21일 날 시드니로 돌아가니 그 이후로 날짜를 다시 잡아야 했다.
또, 재영 아빠가 아가들을 데리러 21일 날 브리즈번까지 오니까, 둘째와 내가 자동차로 아가들을 네 시간 동안 운전하여 브리즈번까지 배웅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이, 번거롭다 생각하면 번거롭고, 서로서로를 위하는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이라 생각하면 한없이 포근한 사랑이다.
사위가 연말까지는 휴무라니 난,그날부터
2020. 1. 1일까지, 9일간의 달콤한 육아휴가를 내 집에서 보낼 수 있게 된다.
올 7월 7일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가들과 붙어 지내 온지라 할미 몸이 나달 나달 해져 있어서인지, 그날이 기대되는 건 사실이다. 손주들이 올 때는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된다고나 할까.
가끔 몸은 고달프더라도, 새끼들은 언제 봐도 참 이쁘다.
이번엔 시드니에서 하비 베이까지, 한 번만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대신 육로가 더 길어졌지만그 편이 한결 수월했다. 새벽 비행기 말고 낮 비행기 표를 끊었으니 넉넉히 시간을 두고 천천히 딸네 집을 나와 시드니 국내선 공항에 도착했다. 한 달 전에 아가들 둘을 동반하여 비행하였던 경험이 있으니 여행길에서 아기 돌보기가 한결 수월했다. 이래서 신입사원 뽑을 때 경험, 경험 하나보다.
어른 셋이 23개월 차 아기 하나를 좇아 다니고, 2개월 3주 차 다른 아기 하나 우유 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아주고 하는 건, 이제 일도 아니었다. 눈 감고도 척척 해결할 수 있는 즐거운 게임이었다. 하긴 게임도 오래 하면 몸이 지친다던가? ㅎ
오, 여기서도 총체적 난국의 사태가 빠지면, 지구가 아니 돌던가.
두어 시간 동안 시드니 국내선 공항 안을 천방지축 휘젓으면서 요리조리 사람과 가설물 사이를 빠져 제 맘껏 달아나는 꼬맹이 하나를 따라다니면서, 34번 게이트에서 기다려오던 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서려하는데, 요 꼬맹이가 엉거주춤하게 서서 '응가 응가' 한다.
재영아, 그래그래 응가 잘했어. 아구 우리 재영이 최고야, 역시. 재영이 등을 투둑 투둑 두드리고 꼭 안아주지만, 촌각을 다툴, 시간이 금인 이 시각에, 이거 소위 총체적 난감 지경이렷다.
맘 급해진 할미가 16킬로짜리 우리 외손주를 들쳐 안고 페어런츠 룸을 찾는데, 글쎄 급하니 그 룸이 찾아지질 않아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겨우 찾아 들어와 기저귀를 벗기고 닦고, 갈고... 사위와 장모가 일사불란 하나가 되어 1분 만에 후다닥 뒷수습까지 무사히 마치고, 이번엔 사위가 재영이를 들쳐 안고서 공항 안을 휙휙 눈썹을 휘날리며 달리듯 걸었다.
보통 공항 리셉션에서는아기들을 배려하여 여느 승객보다 먼저 태워주는데, 재영에미는 재영이가 비행기 안에서 조금이라도 갑갑해할까 봐 맨 나중에 타려고 저만치 서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40분을 하비 베이로 날아오는 동안에 이번엔 운 좋게도 두 아가의 옆자리가 텅텅 빈 터라 재영이는 맘껏 뽀로로를 시청하며 올 수 있었고, 지 엄마랑 띄엄띄엄 비행기 바깥의 풍경도 즐길 수 있었다.
착륙할 때 재윤이는 귀가 아팠는지 칭얼칭얼 거리며 하늘을 점점 멀리하며 땅으로 착, 착륙했다. 아, 이만하면 양호한, 두 번째의 외가 길 비행여행이었다.
아기들 이모, 나의 딸이 마중을 나왔고, 한 시간 40분을 달려 번다버그 집에 무사히 기나긴 여행의 닻을 내렸다.
둘째 딸은 온갖 정성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준비해 포장해두었고, 냉장고엔 음식을 그득~히 채워 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영이는 이모를 만나서 좋은지 방실거리며 장난을 걸기 시작하고, 재윤이는 할미 방에다 눕혀놓으니 양손 발을 흔들고 또 흔들어제치고 꺅꺅 소리까지 내지르며 잘도 놀았다. 우리 어른들은 그런 아가들만 바라봐도 그저 기분이 업 됐다.
평강과 기쁨과 행복이 파도처럼 출렁출렁 가슴으로 쏴쏴 밀려들었다. 마음 졸여 원행 한 보람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