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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Oct 28. 2022

딸네 집에 갈 때마다 참깨를 볶는다


그 집은 항상 깨를 볶고 살아.




알콩달콩 재미나게 깨 볶듯이 잘 삶, 이 말 함의된 볶은 깨가 난 그저 좋다. 집안에 고소한 내음으로 그득한 깨 볶듯이 살다 보면 사회, 경제, 인품... 가정의 모든 것이 시나브로 해결된다고 난 믿는다.



그렇다. 내가 깨를 볶아가면 시집간 딸네도 신랑이랑 아가들이랑 깨 볶듯 알콩달콩 더 잘 살 것만 같다. 그래서 난  5년 전 딸이 시집을 간 후로 집에 갈 때마다 언제나 부터 볶는다.



것도 모자라 작년 12월에는 딸의 친구네 집, 사랑이, 서준이, 선아네, 그리고 사돈네까지  다섯 병의 깨를 볶아갖다 줬으니, 나의 깨 사랑의 잔이 살짝 넘치기도 했다.



내가 가는  가게도 이 동네에서 가장 좋다고 소문난 집을 찾아간다. 100여 개의 박스에 온갖 마른 곡물이 즐비하게 진열되어있다. 가게 안으로 지방을 하나 더 넘어서 들어가면 색의 젤리와 초콜릿, 사탕 같은 다양한 입 다실 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아이스크림과 커피도 판다.




이쁜 가게만큼 일하는 스텝들도 하나같이 모두 친절하다. 이런 가게에서 사 온 깨는 고소한 맛이 더 진할 것 같아서 매번 이곳을 찾는다.

이번에는 간 김에 좁쌀도 좀 샀다. 일반 쌀에다가 검정콩, 재스민 쌀, 검정쌀, 찹쌀과 섞어놓았다가 수다쟁이 한국산 쿡쿠로 밥을 다. 지런히 잡곡밥을 취하여 건강하게 오래 기 위해서다.





오늘은 이른 새벽에 깨를 볶았다.

깨를 볶는 일은 인생을 사는 것만큼 조심스럽고 진중해야 한다. 깨를 볶을 때 한눈을 팔면 안 된다. 무엇보다 온도조절이 중요하다. 팬이 조금 뜨듯해지시작할 때 스위치를 싸게 낮은  맞추어놓고 나무주걱으로 아기 거북이가 기어가듯 슬금슬금 닥을 긁듯이 저어주어야 한다. 



깨를 볶 사람의 정성과 의 등급 높을수록 하얗던 날것의 깨 브라운 칼라로 변한다. 잘 볶일수록 브라운 색은 선명해지고 더 고소한 맛이 난다. 잠깐이라도 볶은 깨를 향한 정성이 식으면 깨는 순식간에 블랙으로 타버린다. 그러니 깨를 볶을 때는 깨한테 올인해야 한다.



깨의 색이 변하는 리듬과 깨를 볶는 자의 맘이 서로 하모니를 이룰 때 깨가 적당하게 잘 볶인다.




그 사이에 한눈을 팔며 브런치에 올릴 사진을 찍는, 그 몇 초의 순간도 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때로  인생사가 그러하듯 깨를 볶는 일도 냉정하고 냉철하다. 볶이는 깨는 냉혈동물다 더 감정이 없으니 깨를 볶는 자는 깨를 볶기 전부터 항상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   



깨를 새까맣게 태우지 말 것.
탄 깨는 쓰니까.



오늘 볶은 깨는 브런치 작가님들과 함께 볶은 거나 마찬가지다.



브런치에 올리기 위해 빛의 속도로 손을 놀려 사진을 찍고, 생각을 적고 하다 보니 팬 바닥의 깨가 살짝 타기는 했다. 하지만 주부 36단이다 보니, 보시다시피, 아예 검정숯으로 까맣게 태우진 않았다. 마나 다행인가.



너무 까맣게 된 검정깨는 걷어내고 남아있는 깨의 봉우리를, 손가락 끝에 침을 발라 콕 찍어서 입에 넣었더니 바사삭, 하며 깨의 껍질이 깨어지면서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번진다. 성공이다.



오늘은 특별히,
 더 고소하고 구수한 맛이 깊다.
참 감사하다.
딸네 집도 더욱 풍성한 깨를 볶으며
잘 살 것이니까. 지금도 알콩달콩 이쁘게 잘 살고 있지만 말이다.



볶은 깨를 식히는 동안,
나의 집안으로도 고소한 내음이 솔솔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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