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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Nov 29. 2022

구름 낀 시간을 버티면 더 붉은 해가 뜬다


나, 일 그만둘까.

출근 전에 딸은
그 이유를 말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난 속으로, 눈물이 나올 땐 촉촉하게 적셔주는 게 맞다고, 혼잣말을 했다. 평소 딸이 우는 모습을 못 보았기 때문이다. 감정이 너무 헤퍼도 탈이지만, 감정이 탈수된 빨래처럼 메말라도, 삶이 너무
퍼석거릴 테니까.




딸이 여기 호주 시골에서 일한 지 7년 1개월이 되었다. 시드니에서 1년 인턴쉽을 끝낸 후 같은 숍에서 1년을 더 있었다. 그러다 2015년, 그 당시 영주권을 받으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시골로 나야 했다. 하면 2년 후에 도시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돌아간다. 그들에겐 연고 없는 시골생활이 무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이라 해야 하나, 딸은 도시형이라기보다 컨츄리이어서 시골에 눌러앉는 걸 선택하게 되었다. 함께 사는 나도 기가 맑느린 가적인 전원생활다. 

이곳은 바다같 끝 모를 평원, 평원 같이 넘실대는 바다, 그리고 바다와 평원을 에워싸는 실몽실한 흰구름을 담은 하늘이 있다. 수평선과 지평선으로 은  대자연이 펼쳐지는 이곳에서, 자라나는  소소한 풍경은 날마다 다르게 느껴지니 감탄과 감사가 절로 나온다.




그럼에도 가끔 지인들은 전화로 내게
말한다.



 사람 많도시로 나오게 하여 사람을 만나게 해 줘야, 시집을 간다고. 밥, 청소... 모든 걸 엄마가 다해주 편리한 집에서 딸을 쫓아내 딸은, 외로워서라도 시집갈 거라는 등으로 나를 깨 볶듯 다.

그러나 정작 장본인이 끄떡을 안 하니 아무리 도 시집을 가는 일은 대신해 줄 수도 없일이 아닌가. 구나 자녀들 혼인시키는 덴 숙맥인 어미가 어찌할 방도도 없으니 그 전화를 끊고 나서, 난 찬물만 들이키곤 한다. 렇다고 사윗집공고를 방방곡곡 낼 수는 더욱 없다.





아무튼 그녀가 약사로 근무한 시간을 다 통합해보면 10년이 다 되어간다. 가 보기에도 성실 근면형이고 동료들한테도 신용이 두다. 사에 물샐틈없이 완벽형이다. 이보다 더 이쁜 마음을 가진 아이를 난 예전에도 지금까지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정말이다. 믿는 건 자유다.



그런 그녀, 몇 달 전만 해도
꿈이 하나 있었다.  



같은 에서 10년 근무를 꽉 채워서 3개월 유급휴가를 받는 꿈을. 다.  나라는 그런 룰이 있다. 어쩌 장본인보다 에미인 내가 꿈에 부풀어 있었던 듯싶다. 그래, 어느 날 그녀에게 물어다.


딸,
3년 후 3개월 휴가 받으면 뭐할 거야?



엄마하고 한국에 같이 가서 한 달 놀다가, 패키지여행에 조인해서 스페인, 이태리 등지에나 가볼까. 우린 돌아다니는 덴 게을러서 자유여행보다 패키지가 편하고 맞을 거야  그치, 딸이 이렇게 말했고, 난 나한테 복권처럼 안겨오는 그 을 얼른 품에 꼭 안았다.

그려, 그래 보자. 울 딸 장하다. 한 곳에서 10년이나 버티면서 일하고.

요즘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직 이 될 시간은 멀고 멀었는데 김칫국물부터 홀짝, 들이킨 격이 되었다. 


 

하긴  그때, 몇 개월 전 해도 딸에게 남은 3년은, 10년을 다 채우는 데 그리 멀지 않은 시간으로 느껴졌었다.  장본인인 딸도, 곁에서 지켜보는 이 어미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때까지 7년을 넘게 채웠는데, 앞으로  2년 11개월을 못 채울까, 했으니. 

아직 채우지 않은 2년 11개월은, 이미 채운 7년이란 시간에 비해, 노루꼬리만큼이나 짧았으니 쉽게 각했다.

런데, 며칠 전에 딸은 아침에 출근 가운을 입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 약사 그만둘까.

나는 말을 좀 더듬으면서 물어보았다.

뭐, 뭐가 젤 힘든데?

엄마, 지금 그 이유를 말하면 눈물 날 것
같아.




딸이 눈물을 참다가 울먹이다가 끝내는 눈물을 닦으며 말한 이유는 단순했다.


소위 말하는 '진상고객들' 때문이었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막무가내 고객이 한 번씩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질러 대고 면 속수무책으로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거였다. 거의 10년을 그렇게 일하여왔으니 의 성질머리대로 곡차곡 스트레스가 목까지 차오른 것 같았다. 의 성격은 달빛처럼 고요하고 항상 평정을 유지한다. 성격으로 평행 게임을 하면 그랑프리 감이다. 난 그런 아이가 직장에서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을 줄은 몰랐다.

뿐 아니라 거기, 리테일 숍에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이 그런 고충을 앓는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그녀는 출근을 해야 하니 코를 한 번 풀고, 눈물을 다시 닦고, 물을 한 잔 마시고 집을 나섰다.



행여 그만두더라도 올 해말까지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은 호주에도 일할 사람이 부족하여 그녀를 대신할 신규 직원 채용이 힘든 시기다. 최소한 약국에다 2개월은 노티스를 줘야 하는 등, 하루아침에 해결될 간단한 사안은 아니다. 


그러고 보,  직장 다니는 일도,  직장을 찾느라 력서를 내는 일도, 이를 지켜보는 일도 다,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위해주면서 구름 낀 시간을 버티다 보면 해가 뜰 것은 분명하다. 구름 속에서 헤매며 견디다 맞은 해는 더 붉게 느껴 게 틀림없.



며칠 후 딸은, 그냥 지나가는 바람일 수도 있고, 아직은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난 그저 조용히 기도를 한다. 그녀 마음 잠잠한 평안 들기를. 구름이 걷히고 붉은 해가 뜨기를. 3개월 유급 휴가가 날아가도 좋다. 딸의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유롭게 살기를.


마는 바람이 아니어도 좋다. 때로는 삶의 바다에 닻을 내린 채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아도 좋다. 그러다 노를 저어 어디론가 유유히 떠가도 좋다. 네가 어떤 결정을 해도 엄마는 다 찬성이다.

이때까지 열심히, 아주 열심히 산 너의 흔적이 다, 엄마 가슴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너를 믿기 때문이다. 


시간을 버티는 건 힘들지만, 그 속에서 더 밝은 해가 뜨는 걸 엄마는 믿는다. 그러니 걱정은 안 한다. 딸아,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렴.



딸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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