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후 쪼잔해진 엄마
- 배부른 게임 12
엄마가 달라졌어요.
살찌면 심장에도 안 좋다며, 150불을 걸고 살 빼는 게임을 하자던 딸의 청에 의해 다이어트를 시작했었다. 그리고 3.3Kg의 살을 뺐다. 큰 시험이 끝나면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듯, 다이어트 후 조금만 많이 먹어도 살이 가속도로 붙는다는 요요가 기다릴 줄은 난 또 몰랐다. 어렵사리 뺀 살을 요요에게 줄 수 없다.
그런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난 아침마다, 아니 아침저녁 수시로 체중계 숫자를 체크한다. 살 빼는 덴 물론, 몸에 좋다는 양배추를 일주일에 4일을 먹는다. 다이어트 후 30일이 지난 지금은 밥 조금, 야채샐러드 중심으로 나의 식단이 최적화되어 있다. 우리 집 밥퍼인 딸이 밥을 푸며 오늘도 묻는다. 엄마, 요만큼 줄까? 아니 반만 줘. 그러면 오,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그러면서 가벼워진 밥을 건네준다.
엄마, 재미없다.
딸이 쉬는 날, 어제 그녀가 내게 물었다. 엄마, 간식으로 와플 구워줄까. 아니, 너 혼자 먹어. 난 아직 배불러. 이전 같으면 뱃살이 2층에서 3층으로 부풀어 오르든 말든 무조건 예스, 라며 기계에서 갓 나온 고소 따끈 와플 곁에 커피에다, 커피콩이 든 아이스크림까지 곁들여 멌었었다. 그녀와 먹는 게 마냥 즐거웠더랬다. 하지만 요즘은 내 몸 가벼운 것이 마냥 좋다. 라이트해 진 내 바디를 사랑하게 되니 와플은 사양한다. 그녀가, 에이 요새 울 엄마 재미*가리 하나 없네, 한다. 가끔 버르장머리 없는 농을 통, 던진다.
소식하는 엄마.
자자, 소식하시는 울 엄마, 요만큼 오케이? 밥을 반공기도 안 채우고 내게 보여준다. 응응 고만큼만 줘. 고마워. 밥퍼, 그녀가 다이어트 후 요요를 방어하는 내게 적응해 간다. 나는 소식에 절대 적응하는 엄마가 되어있다. 요요를 방어하는 일이 즐겁다. 그만큼 가벼워진 몸이 건강으로 가는 길임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식사 후 숨쉬기부터 편해졌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건강한 느낌인가. 그걸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난 하루 6000보 이상 꼬박꼬박 걷는다. 어제는 숲길을 14,000보를 걷고 왔다. 체중계 숫자를, 낮아져서 겸손해진 그대로, 철통방위하리라는 구체적 꿈이 생기고 그 꿈이 하루하루 채워지니 즐겁다. 소식은 절제와 응축과도 통한다. 인간의 실존을 응축한 자코메티, 얼마나 멋진 사유하는 예술가인가. 우아한 절제를 온몸으로 가리키는.
쪼잔해진 엄마.
해외에 살아도 밥이 보약이라는 걸 공식처럼 믿고, 해외에 살다가 행여 병이라도 나면 대형사고니, 난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열정을 다해 요리에 열중해 왔었다. 식재료 사는 일에 아낌없는 주부였다. 가족이 맛있다, 맛있다 하는 장단에 맞춰서 우린, 수저를 바삐 움직였더랬다. 가계지출은 식비가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한인식품점 주인이 뭘 이렇게 많이 사요, 하며 농을 건넬 정도로 난, 먹거리가 될 온갖 식재료를 다 사 와서 냉장고와 팬트리를 꽉꽉 채우던 통 큰 주부였었다. 그러다 요즘은 반액세일하는 쌀도, 고기도, 그냥 지나쳐온다. 지출이 적으니 지갑이 두둑하다. 그 절약의 맛을 체감하는 일도 즐겁다.
밥알 한 알 한 알을 음미하며, 오래오래 곱씹어 삼키는 일도 재미있다. 흰쌀에다 검정쌀, 찰현미, 검정콩, 좁쌀로 지은 밥알이 이렇게 고소하며 찰지고 달큼한 것을 난 왜, 예전엔 몰랐었는지. 주부 된 지 36년 만에야 깨우쳤으니. 밥알을 잘근잘근 씹으며, 좁쌀 한 톨과 검은콩 한 조각에 든, 헤아릴 수 없이 반짝거리는 햇빛과 초록들판의 산들바람을 음미한다. 그리고 농부의 땀 흘린 노고까지 헤아리며, 오늘은 사과 두쪽을 먹을까, 세 쪽을 먹을까 헤아리는 쪼잔한 주부가 되어있다. 어제의 0.35그람이 그대로인 체중계 숫자 앞에서 싱긋 웃는.
쪼잔해진 내가 이렇게 행복한 줄
예전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