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까만 돌무덤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내 머리가 돌인가. 방금 외운 단어도 머리에서 툭 튕겨 나오고, 퍼펙트 perfect [pə́ːrfikt]라는 쉬운? 말도 현지인 앞에서는 발음이 통과하지 못하고, 수십, 수백 번을 연습한 스피킹 문장 앞에서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머리가 하얘지는지, 그러니 내 머리는, 통기성 부족한 저 고집불통스런 검은 돌이라 생각했다.
사과한 알 익는 데도.
이 나라도 영어공부가 어려운 걸 인지했을까.작년부터 영주권자에게 혜택을 주는 영어수업 시스템이 바뀌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510시간의 무료 영어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작년부터는, 원하면 무한대의 시간을 정부에서 서포트해 준다. 하긴 사과 한 알도 익으려면 1년을 애지중지 거두어야 하는데, 수백 수천 알의 타국언어와문화익히기가 하루아침에 되나.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려면 호주전역에 분포되어 있는"테이프Tafe 컬리지"에 등록을 하면 된다. 나는 작년 3월까지 510시간을 채우고 그만두었다가 어제 다시 등록을 하였다. 화, 수 이틀을 다니기로 했다. 운이 좋다고할까. 다음 주 화요일은 안작데이라는, 이 나라 순국선열추모의 날인 공휴일이니 오지 말란다.시간이 겹치는 블랭킷 바디스 뜨개질 수요교실엔 한 달에 한 번씩 가기로 했다.
선생에게 이름을.
처음에 난, 열정과 실력이 짱짱하던 젊은 말리사 선생한테 티쳐,라고 불렀었다. 몇 달 후에 각국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선생도 그냥 이름을 불러. 그래서 내가 물어보았었다. 넌 뭐가 좋아? 이름을 불러도돼?라는 질문은, 이 나라에서는 당연히 우문이었다. 그러자 선생은 다정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티쳐라고 부르면 좀 어색해. 그냥 이름으로불러줘.
그 이후부터 난 맘 놓고 말리사, 말리사 하며 그녀와 2년 동안 친하게 지냈다. 말리사는 내 영어수업 중, 쓰기에 대해 칭찬을 자주 했었다. 한글로 글쓰기를 좀 하면, 영어로도쓰기는 잘 된다. 또 한국말로 스피킹이 발달되어 있으면, 영어스피킹도 좀 더 유연한입술을 타고 술술 나오는데, 나는 애초부터 글렀다. 한글로도 스피킹이 잼병이니,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며칠 전에 들은, 말리사가 4년제 대학으로 가버렸다는 소식 또한아쉬웠다.
린은 재작년에 부임했다.
교실로 찾아가자 나와 동갑인 린이 나를 반겨주었다. 반백이 된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던 그녀가 오늘은 긴 머리를 내리뜨리고 교실 앞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이 나라 태양이 지어놓은 그녀의 까슬까슬하게 진 얼굴 주름살은 그대로였다. 주름살이 있든 없든, 얼굴살이 거칠든 보드랍든 개의치 않고 늘 민낯으로 웃음 띠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실력은 좀 없어서, 가끔 내가 봐도 말이 좀 안 되는 영어 쓰기로 바꿔주지만, 그냥 웃으며 넘어간다. 요즘 내겐 편하고 즐거운 게 우선이어서.
오늘도 그녀답게 이렇게 말한다.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오면 돼. 서두르지 않아도 돼. 2시 조금 넘어서 마쳐. 그때 봐. 교실 앞에서 바이바이를 하는데, 교실 안에서 홍콩가이 홍이 일어서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앞으로 난, 영어교실에서 일어난 이야기도, 브런치에 한번 써 보려고 한다. 나의 야심작을 기대해 보심도, 그리 섭하진 않으실 듯하다.지금 나, 영어보다 브런치, 젯밥으로 관심이 기울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