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해의 사주팔자에 항시, 맑고 맑은 길만 있는 게 아니다. 늘 맑기만 하면 사는 일이권태롭다. 그러니 구름이 낀다. 붉고 둥근 해가 흰구름 속을 건널 때 빛이 길고 강렬하다. 흰 양떼구름은 해와길벗이 된다. 해를 향해 하얀 조각배가 된다. 동그란 해를 태워 몽글대며파란 하늘을 건너간다. 사람의 시간이 아침에서 저녁까지 동일하게 존재하듯, 해의 길도 진리라, 언제나 동일한 루트가 정해져 있다. 동쪽에서 서쪽. 흰구름이 없을 때해는 홀로, 의연하게, 드넓은 하늘을 구르듯 흐르듯 유유히 떠 간다.
하늘에 먹구름이 낄 때도 있다.
엷은 먹구름이라면 도반이듯서로 밀고 당기며 갈 텐데, 그러나,막무가내로 검은 심술을 부릴 땐, 그땐 어찌하나. 무서운 호랑이 굴 속으로 들어가듯 그냥,자취도 안 남긴 채 해는, 먹구름 속으로 쏙들어간다. 그건 해의 고단수 꾀부림이다. 그럴 때 우린해를 볼 수 없다. 해가 어느 길즈음에 우회하고 있는지, 사람들은알 수 없다. 그저 해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시 빠꼼히 해가 나올 땐, 나이스,하며 블루 스카이에 높이 뜬선 샤인을, 사람들이나이스하게 반긴다.바다에도 우회로가 있다. 높이 파도가 칠 때면, 가던 뱃길을 돌아와 그냥, 정박한다. 뱃길이 지워졌으니, 온갖 배들의 발목을 꼭붙들어 맨다.그건 바다의 우회로다.
공사 중인 길에서 우리는 우회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땅 위에도, 공사 중인 도로는 어디에나 다 있다. 길을 다시 깔기 위하거나, 움푹 파인 곳을 다시 메우기 위하거나, 땅바닥에 노랑 하양의 흐려진 경계선을 명백히 그릴 때,모든 자동차는 우회로로 돌아간다.
본말을 위해, 글길의 우회로를 돌았다.
사람의 관계에도 우회로가 존재한다. 하늘, 바다, 도로 위의 우회로에 비해 좀 복잡해서 풀기도 난해하다. 깨거나 붙이거나 메우거나 선을 그어야 할 모든 공사의, 시작점부터 끝점까지다홀로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나 자신도 근래에 그런, 우정의 우회로를 선정해야 할 기로에 맞닥뜨렸다. 가끔 주변 해변이나 숲길을 워킹하고, 때로 서로의 집에 초대하여 정성껏 요리한 음식도 나눠먹던 그녀가, 나의 문자에 닷새동안 답을 주지 않았다. 난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5일째 되던 수요일 날 답이 왔다. 여행 중이어서 답을 빼먹어 미안하다고 했다. 월요일 날 귀가를 했단다. 마침 그 이튿날 가까운 벗들과 밖에서 브런치를 하기로 해서, 나의 답글을 읽은 그녀도, 명쾌하게 조인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튿날 내가전화한 아침에 잠깐 나눈, 그녀의 통화음색이 딴 사람 같았다. 행여 그녀에게 차가 없으면 내가 픽업을 갈까 해서 걸었다.가끔 그녀 남편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내곁에서 듣던 제삼자가, 그녀 전화목소리에서 찬 기운이 돈다고 했다. 그리고 몇 분 후, 갑자기 딴 일이 생겼다며모임 중에 문자만 하고 그녀는 불참했다. 그녀 우울감이 심해졌나. 아님 뭔가.다른 국적의 문화차이라 치긴, 그녀가 좀 심했다.
내 딴엔 음으로 양으로 맘껏 알뜰살뜰 그녀를 챙겨 왔는데, 그녀도 베프라며 생글거렸는데, 불현듯 냉기가 감도니 난감하다.하늘로 치자면, 먹구름이요, 바다로 빗대볼라치면 풍랑이며, 길 위에선 노란색 경계선이 불분명한 상태다. 그녀와 나 사이의 벗길이불현듯 요원하다. 어디에서 잘못된 건지, 잘모르겠다. 그러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공사구간도, 우회선로도아직은섣불리지정하지 못하겠다. 들뜨지 않고 침착하기로 한다. 나 자신의 자아와 먼저, 진정,깊이 있게 상의해 봐야겠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으나, 나의 자아를 튼실히 공사한 후 우회로를 정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혹내가 까였다면 쿨하게 돌아서주마.너의 사연이 있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