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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Sep 20. 2023

화무십일홍


유통기한은 사람에게도
있음을 목격한다.


겨울을 막 시작하던 유월 첫날 난, 노랑 보라 하 꽃이 필 팬지모종을 둥글고 낮은 화분에다 심었다. 집 앞에 있던 어린 나무 캐내 열두  빌라 앞에 빈 터가 생면서, 집집마다 지니고 있거나 새로 심은 화분을 내다 놓았다. 난 팬지, 거베라, 펜타스, 그리고 꽃이 피지 않는 다육이...로 집 앞 빈터를 놓았다. 미있었다.


집 앞마다 거나 크기 다른 화분이 나오거나, 설치물을 세우거나, 더러는 빈터를 그냥 텅 빈 채로 두었다. 집주인의 성과 화분을 기르는 솜씨가 다 달랐다. 빈터가 채워지거나 그대로 남겨진 모습 하나로도, 그 집주인의 내면이 어떨지 감지되었다. 키 작은 나무를 심어 어울림을 표현하 분위기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가드너를 불러 정원수를 다듬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화분을 갖다 놓기로 한 것이다.


맞은편 집 할아버지네도 몇 화분을 내다 놓았다. 내가 둥글고 낮은 화분을 갖다 놓자, 맞은편에 사는 그도 키가 좀 더 큰, 화분밑 땅을 파서 키를 낮추어 배치했다. 평소 꽃과 야채 같은 식물을 잘 키워서 내가 그린 핑거라 부르던 그의 화분에 꽃이 피기를, 나도 기다렸다. 의 꽃이 2,3일 먼저 피었다. 그리고 달포 전부터 나의 화분이 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기온이 14도에서 23도 사이를 오르내리는 겨울철 꽃은 더디게 꽃잎을 열었다. 봉오리 안에서 피어나던 꽃잎도 그렇겠지만 곁에서 송이가 활짝, 열릴 때를 기다리는 사람의 도 설레었다. 늘 그렇듯 기다림은, 


권태를 설렘으로 떨게 하는
묘미를 지닌다.




요즘도 아침마다 일어나면 물뿌리개를 들고 팬지에게로 다. 밤사이 꽃들은 바람을 못 이기고 납작 드러눕거나, 수분이 부족하여 시들해지거나, 영양보충이 필요하여 허기 진 모습을 띤다. 난 그때마다 꽃들을 일으켜 세우고 물과 비료를 뿌려준다. 이번 팬지 꽃들은 내가 정성을 들인 만큼, 소담스럽게 자라면서 키운 보람을 안겨주었다. 이웃의 유닛 사람들도 팬지 꽃들을 칭찬했다. 그에 비하여 맞은편 그의 팬지는 보름도 못 가서 시들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가서 물과 비료를 뿌리고 일으켜 세워주고 싶었지만, 난 꾹 참았다.


이 동네 사람들은 자기 것은 자기가 스스로 돌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이 기르는 화초가 누렇게 말라가더라도, 자기 손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그저 잠자코 있는 게 이웃의 도리인 듯하다. 타인의 자식이 굶는다고 함부로 간섭하길 원치 않는 원리와 같다고나 할까. , 좀 더 진솔하게 말해볼까. 내가 선뜻, 그의 꽃을 모른 채 하는 또 다른 이유도 내 속내내밀히, 숨어있다. 그에게 몇 번 상처를 입은 후부터 나는, 그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못한다.


불과 이태전만 해도, 그가 구르고 싶어 안달하는 바윗덩이인 양, 멀쩡한 나한테 구르듯 달려와서 다란 소리로, "얘한테 코로나 바이러스 있어",라고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치던 그였다. 그런데 요 근래 그의 위상이, 불타다 남은 재처럼 사그라들었다. 두 살 연상인 그의 아내는 파킨슨 병을 앓고 있고, 그에게는 치매가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그토록 잘 기르던 화초도 시들하다. 이전의, 마치 푸르름이 영원할 것 같았던 그의 강렬한 이 희미하게 바래져 간다. 다소 밉살스럽던 상대라도, 연약하게


나이 듦 앞에선 약해진다.


그저 그가 예전처럼  건강하고 강건했으면 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사람은 없으니, 사람의 생도 화무십일홍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나의 꽃을 케어하면서, 맞은편 그의 꽃을 마주하였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 꽃이 한창 피었을 때, 소리 없이 낮은 곳에서 소소하게 내 소명을 다 하길, 나와 약조할 것. 



나의 유통기한에 품질 좋은 인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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