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영어교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왔다. 깨알같이 박힌 영어지문을 주어진그림과 맞추어 순서대로 배열하는 일은, 정신을 좀 혼미하게 했다. 피로감을 떨치기 위해서 평소대로 가장 먼저 교실을 나왔다. 반친구 마이를초대한 일에 대해이런저런 설정을 해보며 걷고 있었다. 자동차가 주인을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먼저 가는 길이 정석이었으나, 내 몸은 찻길로 혼자 나가 버젓이 서 있었다. 정신이 아득했었다. 그렇게 30초 정도 되었을까. 가엾게도 몸이, 정신줄을 놓치고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돌아온 내 정신이 화들짝 놀랐다.
왜, 내가 여기 서 있지.
누가 볼까 무서웠다. 내 30초 동안의 자취를 감춰버리고 싶었다. 주변을 흘낏거리며황망히,나의 자동차로 발길을 재촉하여 왔다. 차는 감정이 없었다. 움직이지 않을 땐 그저 쇳덩어리 일 뿐이다. 나도 그런 것 같았다. 사회적 교류가 없을 땐 그저 살덩어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몸속 혈류는 작동되고 있었다. 내 자신한테 속상한 걸 보니. 내 몸이 가여운 느낌이 드는 걸 보니. 내 몸을 놓아버렸던 정신이 황당한 걸 보니.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행인지. 정신이 영영, 몸을 떠나버리지 않았으니.
정신을 되찾은 일에 감사했다.
자동차 문을 열고 차를탔다. 운전을 하면서나의황당한 머리를 짤레짤레 흔들어 보았다. 버튼을 누르자 시동에 문제없는 자동차 몸체처럼, 정신을 되찾은 내 몸도 문제가 없었다. 열쇠를 지닌 자동차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 바퀴를 굴리듯, 정신을 되찾은 내 몸도 휠을 굴리며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를 번갈아 잘 밟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아까 그 30초가 참 속상했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나의 집 앞을 휙지나쳐 버렸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다. 대신, 쇼핑센터로 운전 잘하고 가서 몇 가지 장을 봤다. 파, 계란, 두부, 치킨너겟.
정신이 정상인지 시험해 보았다.
머릿속이 좀 흐리멍덩한 것 빼고정상이었다. 집까지 오는 길에 정신적인문제는 없었다. 30초 동안, 내 몸속에서, 뭐가, 어떤 부품이탈이 났었나. 내 몸을 너무 혹독하게 부려먹었나. 자동차도 장거리 여행 시 두 시간씩 쉬게 하여야 고장이 안 난다던데. 잠깐씩이라도 본체를 쉬게 하여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다던데. 생각해 보니 내 몸도 그렇다. 연식이 좀 되어 낡은 내 몸과 한 달 전 잇몸 수술 후유증도한몫했다.몸안의 부품 중,심장일지 뇌일지 아님 그 다른 무엇일지 정밀히 알 수 없지만, 어느 한 부분에 배터리가 잠시 나갔었다. 그나마그만하길 다행이었다.아주 잠깐이었고, 나밖에 몰랐으니.앞으로는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가 발견되어도, 내 몸의 능력에 닿지 못하는 정신은 애초에 접기로 하였다.몸을 먼저 배려하기로 작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