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2. 수.
정신이 잠시
방전 됐었다.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영어교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왔다. 깨알같이 박힌 영어지문을 주어진 그림과 맞추어 순서대로 배열하는 일은, 정신을 좀 혼미하게 했다. 피로감을 떨치기 위해서 평소대로 가장 먼저 교실을 나왔다. 반 친구 마이를 초대한 일에 대해 이런저런 설정을 해보며 걷고 있었다. 자동차가 주인을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먼저 가는 길이 정석이었으나, 내 몸은 찻길로 혼자 나가 버젓이 서 있었다. 정신이 아득했었다. 그렇게 30초 정도 되었을까. 가엾게도 몸이, 정신줄을 놓치고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돌아온 내 정신이 화들짝 놀랐다.
왜, 내가
여기 서 있지.
누가 볼까 무서웠다. 내 30초 동안의 자취를 감춰버리고 싶었다. 주변을 흘낏거리며 황망히, 나의 자동차로 발길을 재촉하여 왔다. 차는 감정이 없었다. 움직이지 않을 땐 그저 쇳덩어리 일 뿐이다. 나도 그런 것 같았다. 사회적 교류가 없을 땐 그저 살덩어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몸속 혈류는 작동되고 있었다. 내 자신한테 속상한 걸 보니. 내 몸이 가여운 느낌이 드는 걸 보니. 내 몸을 놓아버렸던 정신이 황당한 걸 보니.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행인지. 정신이 영영, 몸을 떠나버리지 않았으니.
정신을 되찾은 일에
감사했다.
자동차 문을 열고 차를 탔다. 운전을 하면서 나의 황당한 머리를 짤레짤레 흔들어 보았다. 버튼을 누르자 시동에 문제없는 자동차 몸체처럼, 정신을 되찾은 내 몸도 문제가 없었다. 열쇠를 지닌 자동차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 바퀴를 굴리듯, 정신을 되찾은 내 몸도 휠을 굴리며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를 번갈아 잘 밟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아까 그 30초가 참 속상했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나의 집 앞을 휙 지나쳐 버렸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다. 대신, 쇼핑센터로 운전 잘하고 가서 몇 가지 장을 봤다. 파, 계란, 두부, 치킨너겟.
정신이 정상인지
시험해 보았다.
머릿속이 좀 흐리멍덩한 것 빼고 정상이었다. 집까지 오는 길에 정신적인 문제는 없었다. 30초 동안, 내 몸속에서, 뭐가, 어떤 부품이 탈이 났었나. 내 몸을 너무 혹독하게 부려먹었나. 자동차도 장거리 여행 시 두 시간씩 쉬게 하여야 고장이 안 난다던데. 잠깐씩이라도 본체를 쉬게 하여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다던데. 생각해 보니 내 몸도 그렇다. 연식이 좀 되어 낡은 내 몸과 한 달 전 잇몸 수술 후유증도 한몫했다. 몸 안의 부품 중, 심장일지 뇌일지 아님 그 다른 무엇일지 정밀히 알 수 없지만, 어느 한 부분에 배터리가 잠시 나갔었다. 그나마 그만하길 다행이었다. 아주 잠깐이었고, 나밖에 몰랐으니. 앞으로는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가 발견되어도, 내 몸의 능력에 닿지 못하는 정신은 애초에 접기로 하였다. 몸을 먼저 배려하기로 작정했다.
생과 힘은 유한하니,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