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9. 화.
새벽 밥상을 차린다.
아이가 일곱 시부터 일을 하는 날은 다섯 시에 아침상을 차린다. 직장이 집에서 10분 거리인데도 아이는 어김없이 일 시작 두 시간 전에 아침을 먹는다. 그렇다고 화장을 심도 있게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일찍 밥을 먹어두는 게 마음이 편하단다. 오늘 아침은 잡곡밥과 어묵국, 배추김치, 파김치, 그리고 내일모레 올 큰 딸네를 위해 부쳐둔 동그랑땡, 꼬지부침개였다. 아이가 숍 문을 여는 날은 정시보다 한 시간 앞당겨서 여섯 시에 집을 나선다. 이른 새벽에 이런 일을, 누군가 시켜서 하면 몸이 천근으로 늘어지며 반감이 생기겠지만, 자신이 찾아서 일을 하니 아이의 발걸음이 능동적이다. 아이를 보내놓고 난 참깨를 볶기 시작했다. 비행기로 한 시간 반 거리, 그러고도 차로 그만큼 더 와야 하는 곳에 사는, 큰 딸네를 위해 한 됫박 사둔 새하얀 참깨봉다리를 풀어헤친다. 씻어서 나온 거라 그냥 행복 한 줌 넣어서 같이 볶기만 하면 된다. 몸에 익어 수월하다.
딸네 가정을 머금으며 깨를 볶는다.
고소한 깨 볶듯이 잘 살라고 볶는다. 깨알이 옹골차게 영글어 장난치듯 톡톡 튀어 오른다. 하얀 깨알이 브라운으로 변하는 알갱이마다 친정엄마의 기도의 마음을 담는다. 이서방과 어우렁더우렁 아들 둘 무럭무럭 잘 키우며 지금도 소리 없이 잘 살지만, 앞으로도 고만큼만 알콩달콩 깨알같이 재치 있게 살라는 소망을 담는다. 깨알깨알에서 고소한 냄새가 올라오는 게 딸의 삶의 향이듯, 깨 볶는 어미얼굴에 깨꽃 닮은 웃음이 뜬다. 행복이 골고루 볶이라고, 닳아서 가벼워져 손에 착 감기는 나무주걱을 바질바질 젓는다. 중저온의 불온도가 점점 뜨거워지니 행여 탈까 조심스러워 얼른 불을 끈다.
잔여불기운에서, 잘 마른 가을낙엽색이 되면 곁에 깔아 둔 하얀 종이에다 볶인 깨를 사르륵 펼쳐가며 붓는다. 십분 정도 쉬엄쉬엄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깨 담을 용기를 찾아오면 볶은 깨향이 천지사방 등산을 하며 맞춤하게 식는다. 그중 절반은 볶은 날짜를 기입하여 통깨로 부어 담고, 나머지 절반은 소금을 한 꼬집 넣어 부드럽게 갈아 깨소금을 만들어 담는다.
큰딸을 시집보내고부터 어미가 딸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딸네의 행복을 볶는 행사인 양 깨를 볶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딸은 어미가 건네주는 행복을 애지중지 받는다. 오, 맛있겠다. 고마워, 엄마. 다정한 이 말 한마디. 그러니 깨를 볶는 어미의 정성과 성정이 오롯이 행복이 된다. 새벽에 깨를 볶아보니 고소한 볶은 참깨 속 행복에, 새벽이라는 별책부록이 하나 더 든 느낌이다. 새벽깨에선 향도 더 고소하게 전해온다. 그래, 어미가 전하는 깨알 속 행복이 깨알만큼이라도 더할수록 좋은 거니까, 다음번에도 새벽깨를 볶기로 마음을 먹는다. 어미가 시집간 딸에게 전하는 새벽행복 별책부록을 깨알이 깨알깨알깨알 ... 알알이 머금을 터.
첫새벽에 나온 딸네 행복을
깨알깨알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