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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꽃을 더하면

by Sanga Kim Sep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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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을 좋아한다.

꽃을 덜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날이 있다. 딱히 축하할 일이 있거나 기분이 우울한 것도 아니지만 소소하게 기분전환이 하고 싶은 날.

그럴 때면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가까운 꽃집에 들른다. 내가 자주 찾던 꽃집은 그리 세련된 곳은 아니다. 투박한 계산대와 꽃을 다듬는 책상을 제외하면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갖 종류의 식물로 가득하다.


나는 작은 식물원에 온 것마냥 숨 한 번에 신선한 풀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며 꽃으로 눈길을 돌린다. 찬찬히 내부를 둘러보며 그날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모양새를 한 꽃을 두어 송이 고른다. 그 꽃과 어울리는 자잘한 꽃 뭉치도 서너 종류 고른다. 고민이 길어질 때면 가끔 사장님의 추천을 받기도 한다.


시간을 들여 고른 꽃들은 사장님의 손길을 거쳐 내 취향이 가득한 꽃다발이 된다.

온전히 나를 위한 꽃다발이다.


얼른 집에 가서 꽃병에 두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서두른다. 꽃다발을 화병에 넣고 요리조리 위치를 잡아가며 나름의 꽃꽂이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밑부분을 조금씩 잘라내고 물을 갈아준다. 하루 사이에 더 활짝 핀 꽃을 보면 괜히 뿌듯하다.


큰 방과 화장실이 전부인 내 작은 원룸은 생화 하나로 생명력 있는 공간이 된다.

이따금 가까이서 꽃을 들여다본다. 킁킁. 냄새도 한번 맡아보고, 조심스럽게 꽃잎도 만져 본다.

싱싱한 꽃의 잎은 질 좋은 옷처럼 곱고 부드럽다.

7평 남짓한 공간에서 자연의 산물을 감상하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는 건 퍽 행복한 일이다.


꽃의 종이 동일하다고 해서 생김새 또한 같은 건 아니다. 꽃은 각자 고유한 채도와 명도를 지닌다.

같은 종류의 분홍꽃이라도 조금 더 옅은 분홍이 있고 진한 분홍이 있으며, 더 어두운 분홍이 있고 밝은 분홍이 있다.

꽃잎의 모양이 일정한 것도 있고, 들쑥날쑥 불규칙적인 것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다채로운 매력으로 공간을 화사하게 하고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시간이 흘러 꽃이 시들 때까지 온 감각으로 -눈으로, 코로, 손끝으로- 자연을 느낀다.

꽃은 지구가 주는 선물이다.



꽃은 좋은 선물이다.


친구를 만날 때, 이따금 이유 없이 꽃을 선물하곤 한다.

그들의 평범한 하루는 내 작은 이벤트로 인해 특별한 날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꽃을 선물하는 행위로 서로를 생각하는 작고 귀여운 마음을 나눈다.


꽃집에 들어가 누군가를 위한 꽃을 살 때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꽃을 받고 활짝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꽃이 어울리는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상대를 향한 애정이 담긴 꽃다발을 완성한다.


그러고선 한층 더 들뜬 마음로 계산을 마친다.


꽃을 구매할 때, 상대방의 밝은 미소를 상상하며 웃음 짓는 것만으로 충분히 제값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설레는 감정도 함께 구매하는 셈이다.

친구에게 줄 꽃을 사가는 길


가벼운 약속이 있던 날, 친구가 무심하게 건네는 꽃 한 송이는 그녀의 머쓱한 표정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된다.

무슨 꽃인지, 꽃다발이 얼마나 큰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를 떠올리며 꽃집에 들어설 만큼의 애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해바라기 한 송이만 받아도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고 몇 년 후에도 추억할 수 있는 따뜻한 기억으로 마음에 남는다.



꽃은 사치가 아니다.


유럽 마트에서는 꽃과 화분을 판다. 가격도 꽤 합리적이다.

그래서 꽃을 고르는 할머니나, 꽃을 든 할아버지를 자주 볼 수 있다.

꽃을 선물하는 대상이 자신이던 타인이던,

꽃과 함께인 사람을 보면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할 때의 설렘이 전해져 괜스레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꽃을 사는 사람의 마음은 대부분 비슷하다.

상대가 꽃을 받고 밝은 미소를 지었으면 하는 마음 그뿐이다.


유럽 거리를 거닐다 보면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테라스에 식물을 두는 집이 많고, 식당이나 카페 창가에 화분이 놓인 것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잘 가꿔진 거리의 화단과

마트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꽃을 통해 누구나 일상적으로 식물을 접하고 즐길 수 있다.


식물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정서적 가치가 얼마나 큰 지 알기에,

자연을 누리는 데 있어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배려하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본다.


덕분인지 그들은 꽃이 주는 여유를 알고 이를 잘 누리며 사는 듯하다.

이들에게 꽃은 사치가 아니라 일상이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마트에 갈 때마다 매의 눈으로 화분코너를 확인한다.

꽃다발은 늘 인기가 많기 때문에, 늦게 갈수록 마음에 드는 꽃을 살 확률이 낮아진다.


마트에서 5000원이면 이 꽃다발을 살 수 있다.

음료 한 잔 가격으로 2주간의 행복을 사는 셈이다.

예쁜 꽃을 사서 집에 두는 행위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새로운 일상의 낙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나를 위한 꽃을 산다.

5000원짜리 꽃다발


꽃병이 없는 집


작년 추석, 오랜만에 만나는 이모를 위해 꽃 한 송이를 샀다.

아뿔싸. 매일 택배가 오는 이모집에 당연히 꽃병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온갖 잡동사니가 넘쳐나는 집에는 정작 꽃병 하나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모부가 즉석에서 '물병'에디션을 제작했다. 생각해 보니 19년간 지냈던 시골집에서도 꽃병 한 번을 본 기억이 없다. 우리네 가족 집에만 꽃병이 없는 걸까?


다음에는 이모집에 어울리는 꽃병을 사 가야지, 했던 추석이었다.



한국에도 자신 또는 타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꽃을 소비하는 문화가 들어왔으면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꽃이 주는 여유를 누리며, 그 가치를 알 길 바란다.

일상에서 꽃과 함께일 때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큰 소소한 행복을 모두가 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는 누구나 쉽게 꽃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물론 그게 꼭 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애정을 가지고 그것을 즐기며 틈틈이 여유를 느끼길 원한다.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무언가 중 하나로써 꽃을 추천할 뿐이다.


'애정을 가지고 그것을 즐기는 것. 그런 순간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_ 브런치 북, 매일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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