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티크 호텔이 즐비한 헐리우드 거리지만 공사장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호텔 공사 현장 신입으로서 내가 맡은 일은 음향 및 통신 제어실 도면 작업이다. 모든 장치들이 제대로 설치되고 작동될 수 있도록 정보들을 잘 조합해 도면을 그리는게 핵심이다. 도면이 잘 그려진다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카페처럼,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서 노트패드에 글을 써야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와이파이 고장은 이 시대에 단수와도 같은 심각한 사태다. 그러고보니 나는 아파트 단지에 물이 끊기는 단수마저도 경험한 세대였다. 아파트 물탱크에 물이 끊기면, 이디선가 큰 물차나 소방차같은게 들어와서 물을 공급해주곤 했다.
요즘 아파트들은 어떤식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도시 차원에서 조성된 지하 수로에서 물을 공급받는 식일 것이다. 90년대에도 배수로는 잘 깔려 있었을텐데, 배수로라는건 로마시대에 이미 달성된 도시공학 기술이건만, 그 시절 포항 한 동네에 간혹 일어나던 단수 사태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본격적으로 건축일을 하면서 그런 것들이 궁금해진다.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러나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러나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것들. 이 말을 반복해 쓴 이유는 재고의 여지가 있어서다. 가시성과 존재여부를 이어주는 접속사에 대한 재고의 여지 말이다. 이 문장은,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것들" 이라고 역접을 활용해 연결하고 있다. 이 역접 뒤에는 존재하는 것들은 대체로 눈에 보인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이 맥락에서 딱 한걸음만 더 들어가면 건축 디자인의 영역에 진입하게 된다. '존재해야만 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면 꽤나 그럴싸한 건축적 명제가 된다. 이 명제는, 생활에 필수적인 복잡한 인프라 시설이 건물 어딘가에 꼭꼭 숨겨져야만 하고, 그 기능적 혜택을 누리는 거주자에게는 깔끔히 포장되어 깨끗한 벽면만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다.
기능적인 존재들을 보이지 않는곳에 숨긴다는 원칙은 우리 주변 대부분의 공간과 제품들 속에 숨어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벽체를 열었을때 나타날 목재 혹은 철제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는 솜뭉치같은 단열재와, 간간이 프레임을 수직으로 수평으로 관통하며 물을 운반하는 검은 플라스틱 파이프, 그리고 약 4미터마다 설치되는 콘센트로 향하는 전선을 감싸는 컨듀잇, 그리고 신선한 공기를 들여보내고 정체된 공기를 외부로 운반하는 덕트까지도 상상해보자. 그 뿐만 아니다. 화면에 이 글을 띄워주는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도 다르지 않다. 앞서 나열한 장치들이 빽빽히 들어선 두장의 벽면 사잇 공간, 그보다 몇배는 더 좁은 두장의 패널 사이에 수백만개의 픽셀부터 회로기판, 저장장치, 메모리, 배터리 등등 모든 기능적 부품들이 들어차 있다. 아니, 숨겨져 있다. 존재해야만 하지만 숨겨진 것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벽체가 닫히기 전에 그 벽 내부를 채우는 모든 프레임, 솜뭉치, 색색의 전선들과 다양한 두께의 덕트와 파이프들을 볼 수 있다는건 건물을 만드는 이의 특권이다. 물론 그게 무슨 특권이냐고 반박할만하다. 솜뭉치에 자욱한 미세먼지와 감전 위협에만 노출되는것 아니냐고. 그러나 고래의 웅장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려면 바다 한복판 물보라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물보라 쯤이야. 나로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평화롭게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겠다. 얼마 남지않는 스패니쉬 라떼와 함께, 그리고 어느새 다시 연결된 와이파이와 함께, 다시 제어실 벽 속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스패니쉬 라떼에 꼭 계피 스틱이 들어갔어야만 할까. 계피커피라니, 맙소사. 계피 스틱야말로 심각한 반박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