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주말 무더위 속에서 우유 한잔 앞에 앉는 것과 같다. 맥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걸리도 아니고, 흰 우유 한잔? 빵긋 웃는 어린이가, 아마도 엄마 혹은 아빠가 냉장고에서 갓 꺼내 투명한 유리컵에 따라줬을 우유를 한껏 들이킨뒤 입술위에 하얗게 남은 우유. 주말의 더위와 한주동안의 피로를 날려줄 음료치고는 너무 건전하다. 물론 이 건전한 이미지는 성장기 자녀를 둔 가정을 겨냥했을 광고와 미디어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다. 진짜 우유에 대한, 나아가 지붕에 대한 이미지는 체험으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지붕은 소비재가 아니다. 우유나 맥주나 막걸리에 대한 이미지는 선명하지만 지붕이 그렇지 않은것은 그 때문이다. 가까운 마트에 가서 사장님 여기 지붕 어떤거 있어요? 하고 묻는 것 역시, 지붕이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나, 주말 무더위 속에서 우유 한잔 앞에 앉는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 지붕이 소비재가 아닌것은 알겠지만 그렇다면 지붕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여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지붕은 여름 속에서 가장 선명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나는 비스듬한 박공 지붕위에 누워있었다. 캘리포니아 특산물같은 태양이 이글거리고, 갓 넘긴 점심 도시락이 뱃속의 길을 타고 꼬록 꼬록 꼬록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정오 무렵이었다. 우리가 짓고있는 다세대 주택의 지붕은 아직 미완성이었다. 지붕 뼈대에 패널을 덮고 못을 박아넣어 모양새는 갖춰졌지만, 아직은 방수도 되지 않고, 마감재가 덮이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렇게 쓰고보니 나름대로 낭만이 있는 낮잠 아니었나. 지붕 위에는 지붕이 없다. 지붕은 건물 최상부를 덮어주는 구조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붕 위에는 하늘만 있다. 태양만 탄다.
그래서 지붕 위는 덥다. 나는 박공 지붕이 갈라지며 그늘이 생기는 곳을 찾아 누워있었으므로 지붕의 건축적인 정의를 무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에게 그 지붕은 3:12의 비율로 14.04도 기울어진 바닥과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점심이 시작되면 다들 다다닥 후다닥 내려가는 덕에 조용히 낮잠자기 딱 좋은, 그런 사방이 다 다 다 트인 방과 같았다. 마크 소장은 사방이 다 트인 방에서 추락하는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비상 대처법을 마치 연극하듯이 우스꽝스럽게 보여주곤 했다. 개구리처럼 두팔과 두 다리를 폴짝 벌리고 어딘가 납작 달라붙는 그 자세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직접 보니 우스꽝스러운게 썩 괜찮았던 날이었다.
지붕이 좀더 평평했다면 좋았을까? 2퍼센트 이상 기울어진 방바닥은 불법이지만, 지붕을 방으로 쓰지 말란법은 없다. 다만 평평한 바닥은 방수가 어려워서 지붕을 평평하게 만드는걸 피해온 것 뿐이었다. 모더니즘 건축에 접어들면서 지붕 그까짓거 평평하게 만들어서 방처럼 쓰지뭐 하면서 루프탑이 생겼으니 이미 지붕위의 방은 실현된 개념. 서울의 수많은 루프탑 공간들만 봐도 구태여 말로할 것 없을 정도다. 평평해진 지붕에는 조금전에 운운했던 낭만 비슷한 것이 있는게 분명하다. 올여름의 지붕에도 낭만, 뭐 그런것 비슷한게 있지않나.
작년에는 2층짜리 다세대 주택의 박공지붕 위였지만 올해는 3층짜리 호텔의 루프탑이다. 지난 여름은 로스 앤젤레스 남부에서도 이름난 빈촌인 콤튼이었지만 올해는 저 북부 헐리우드 힐이 보이는 선셋 거리다. 그 여름 낮잠의 낭만 비슷한 것은 어쩌면 출근길에 수도없이 지나치는 길가의 지저분한 캠핑카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사히 출근한 것 만으로도 그날은 성공이라 할법한 세계에서 지붕위에 올라있다는 것, 거기서 저 멀리 캠핑카들을 바라본다는 것. 길가에 널브러져 있던 주사기 바늘인지 모를 반짝이는 것들을 바라본다는 것. 그러나 올 여름 타는 태양 아래 지붕 위에서 내가 보는 것은 거-대한 광고판들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차가 번쩍이는 렌더링, 대문짝만하게 박힌 제니의 얼굴 아래로 익숙하던 이름의 명품 브랜드, 알고보니 저스틴 비버의 새음반 비주얼이었던 아오지 탄광같은 흑백 이미지, 박물관이 살아있다에 나왔던 유명한 코미디 전문 배우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신작 영화 포스터 등등.
루프탑 공사는 난항이지만 내년 초무렵엔 아마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지붕 곳곳에 숨겨진 빵빵한 고급 스피커 15개가 서라운드로 뿜어내는 파티음악에 아마도 흥겨울 것이다. 여기저기 썬베드를 펼치고 남녀노소 함께 혹은 홀로 누워들 있을 것이다. 어깨를 들썩들썩, 고개를 꿀렁꿀렁 리듬 타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할 것이다. 작년이나 올해나 눕기좋은 지붕이지만 누워있는 지붕 위 풍경이 참 다르긴 다를 것이다. 지붕이란 무엇인가. 지붕이란. 이 루프탑에 누운 친구들에게, 울-라 울랄라 바이브에 젖은 그 손에 쥐어진 잔 속에 우유를 따라보자. 냉장 보관되어 목장의 신선함을 가득 담은, 차디찬 우유에 얼음도 몇개 넣어주자. 누구도 주문하지 않은 아이스 밀크다. 차고 흰 우유는 지붕의 풍경을 어떻게 바꿔놓는가. 우윳빛에 젖은 지붕은 과연 어떤 맛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