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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두산 Mar 28. 2023

선생님과의 작별인사

다시없을 소중한 인연

  2022년 4월 나는 마이소르에 갔다. 방학 동안 그곳에 있는 동료 선생님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배우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약 2-3주 머물렀던 듯하다. 그리고 뱅갈로르에 계신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다음날 뱅갈로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잠나가르로 돌아가려면 그게 좀 더 편안한 길이었다. 그날 오후, 뱅갈로르에 도착해서 선생님 댁으로 갔다. 삼바무르띠 선생님이 계셨다. 어딘가 살이 빠지고, 힘이 좀 없어 보이셨다. 일주일쯤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치료 중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오늘 며칠 만에 처음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하셨다. 몸은 약해지신 것 같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만은 그대로다. 그날 나는 선생님 댁에서 두 분 내외 선생님과 나까지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보통은 선생님의 자제들이 있거나 하다못해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딱 우리 셋 뿐이었다. 사비뜨리 선생님이 요리를 하며 대화에 참여하셨고, 나와 삼바무르띠 선생님은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삼바무르띠 선생님은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시간을 보낸 건 처음이라고 하신다. 책을 보고 공부를 하거나, 환자를 보거나, 프로그램 준비를 하거나 무엇인가는 항상 해오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허허 웃으신다.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에는 언제나처럼 긍정적이고 밝고 기분 좋은 에너지가 넘친다. 선생님은 항상 나의 좋은 점을 보고 말씀해 주신다. 아니 나뿐만이 아니다. 모두의 좋은 점을 찾아주고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로 마음을 따뜻하고 즐겁게 해 주신다. 심지어 어떤 환자들은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데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찾아온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분명 아유르베다를 알리는 좋은 역할을 할 것이고 순수한 의도와 믿음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말씀을 항상 해주신다.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믿음으로 말씀하시니 자연스럽게 나도 그렇게 믿게 된다. 그런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단 한 번도 부정적인 이야기, 핀잔이나 꾸중을 들어본 적 없었다. 항상 믿고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내 등을 토닥여 주셨다. 그런 분이셨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마치 어린아이가 되는 기분이 든다. 울먹이는 어린아이 그리고 옆에서 웃으며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는 선생님. 끊임없는 사랑과 믿음을 하염없이 주기만 하신 분. 나는 그것을 그저 받기만 했다. 그날 선생님께서 주신 작은 책자가 있다. 마음의 평온을 위한 글이 있는 책자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생활에서 적용해 보라고 하신다. 자신 또한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다음날 아침 함께 아침을 먹고, 삼바무르띠 선생님과 사비뜨리 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그렇게 대학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 그룹 채팅방에 사비뜨리 선생님께서 짧은 메시지를 올리셨다. 삼바무르띠 선생님께서 육체를 떠났다는 어감의 내용이었는데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어제 인사드리고 왔는데 육체를 떠나셨다니.. 어이가 없었다. 허무했다.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다고 웃으며 격려해 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어제까지도 힘들면 언제든지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가족이라고, 가족이 있으니 걱정할 것 하나 없다며 걱정 말라고 말씀하셨다. 모두에게 항상 밝고 맑은 영향을 주신 우리 선생님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며칠 동안 뜬금없이 눈물이 났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선생님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어떻게든 가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를 아끼는 선생님의 마지막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삼바무르띠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2015년이었다. 학생들에게 아유르베다 경전을 원전 그대로 읽고 공부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였다. 그게 나의 아유르베다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아유르베다를 다르게 볼 수 있었고, 내 삶에 적용하고 아유르베다의 삶의 원칙 안에서 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은 어느 프로그램에서든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면에 나서지는 않으시지만 뒤에서 모든 이들을 챙기고 격려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셨다. 사비뜨리 선생님께서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동안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아이들을 챙기며 드러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계셨다. 평생을 아유르베다를 공부하고 가르치고 환자를 돌보는 삶을 정성을 다해 살아오신 분이다. 옆에 있으면 보고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본받아서 나도 그런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들은 셀 수 없다. 많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그분이 가신 길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함께 하는 모두가 그런 마음이리라 생각한다. 


  선생님은 물리적으로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내 곁에 항상 계신다. 내가 아유르베다를 공부하고 환자를 보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그 모든 순간들에 그분의 가르침이 함께한다. 못난 제자에게 하염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 아직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말씀드릴 길이 없다. 마음속으로 되뇐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항상 마음에 새기며 저 또한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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