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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두산 Apr 06. 2023

삶의 변화를 위해 기억해야 할 것

변화를 거듭하는 삶

    가족 안에서의 나, 직장 내에서의 나, 사회 안에서의 나, 내 안에서의 나, 친구-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 그리고 뚜렷하게 드러나거나 인식되지 않지만 다른 면의 나. 이런 다양한 면면이 모여 특정한 내 삶의 형태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형태는 고정돼 있지 않다. 어느 면의 내 모습이 변화하면 그것은 모든 삶의 모습을 변화한다. 그러한 지점이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런 여지는 우리가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변화할 수 없는 고정된 존재로 인식한다. 그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대학 진학까지의 과정이다. 학생, 학부모, 선생님 등 많은 이들이 학교 성적과 대학으로 삶의 형태가 만들어지고 마치 그것이 한 번 결정되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것을 실패하면 인생 자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잘못된 전제로 오히려 삶의 모습이 더욱 망가질 수 있다. 삶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여지를 두지 않음으로 한 번의 실패는 고정되고 바뀔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실패한 삶이 된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며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나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변화할 여지가 있는 삶과 한 번 정해진 삶의 형태가 고정되는 삶. 전자는 삶의 변화를 위해 계속해서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변화로 얼마든지 자신의 삶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더욱 많은 시도와 다양한 실패의 경험에서 점점 더 다채롭고 깊은 삶의 형태와 모양을 만들어갈 것이다. 후자는 한두 번의 실패가 만들어낸 고정된 삶의 모습을 붙잡고 살아간다. 실패를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앞으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실패의 두려움을 갖고 살아갈지 모른다. 그러한 상태는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새롭고 다양한 시도에 대한 기회를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유르베다에서 삶은 몸-마음-감각기관-영혼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중 ‘영혼’은 그 존재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존재다. 그 무엇도 이것을 해할 수도, 변화하거나 깎아내릴 수 없다. 그러니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증명하려고 혹은 상처받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모두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다.


Photo by Sasha  Freemind on Unsplash


    인도에서 생활하며 나는 어쩌면 꽤 오랫동안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다.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두렵고, 불안한 감정들이 한 번씩 휩쓸고 지나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상태를 겪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 상태가 평생 지속된다면 차라리 살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어느 시의 제목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읊조리곤 했다. 그렇게 기나긴 밤을 지새우며 지나왔다. 그런 경험은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절박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한때 건방지게도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나 같으면 그런 용기로 삶을 살겠어.”라는 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삶의 다양한 경험과 배움으로 생각과 태도가 변한다. 이제는 그런 상황과 상태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다고 아주 강렬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 어떤 지옥보다 지옥처럼 느껴질 때, 그 무엇도 이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무더운 어느 날, 마치 곧 죽을 것 같은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몰아붙였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냥 그 일이 일어났고, 숨을 쉴 수 없는 갑갑함과 공포가 물 밀듯이 밀려왔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끈이 ‘툭’ 끊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나중에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그 무엇도 너를 해할 수 없어. 이 사실을 기억하고 명심하렴.” 이 말을 머리로는 이해한다. 이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는데 어딘가 가로막는 듯한 느낌이 있다. 어쩌면 평생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나름의 작업이 필요할지 모른다. 아니, 몇 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사실이 사실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Photo by Javier Allegue Barros on Unsplash


    나는 언제부턴가 변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시간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대단한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스스로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해놓은 것도 가진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정확한 방향도 정해놓은 것이 없었다. 다만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한 동력은. 그리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피상적인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다들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니까 하는 척했을 뿐이다. 그것도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 그런데 스스로 공부를 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확히 어쩌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군대에서 수많은 날들을 보초 서며 앞날에 대한 셀 수 없는 상상과 생각을 하고 든 생각이었다. 단순한 생각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해서 알고 있는 것과 내가 스스로 수많은 앞날에 대한 생각을 거듭한 후에 내린 결론은 그 무게감이 다르다.


    변화는 쉽지 않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힘든 일이 나를 변화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어렵다.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이냐고? 다른 사람을 바꾸는 일이라고 한다. 그나마 나 자신을 바꾸는 게 다른 사람을 바꾸는 일보다는 쉬운 일이니 위안이 된다.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한 시도는 언제나 실패의 연속이었고, 새로운 시도의 연속이었다. 작심삼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 하다. 그럴 때마다 우울하고 패배감이 들었다. 이것밖에 안 되는 나 자신이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끄럽고 스스로가 하찮은 존재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 뿐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매번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조금씩 변화는 일어났다. 나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쉬워지는 부분이 생겼다. 아니 쉬워지기보다는 익숙해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처음에 볼 때는 어렵다. 두 번 세 번 보다 보면 익숙하고 할 만한 일이 된다.


    지금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처음 글을 쓰려고 앉았을 때는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머리를 쥐어뜯었다. 지금은 그나마 익숙하다. 그것이 내가 글을 아주 잘 쓰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도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계속 주의를 기울여서 연습하면 언젠가 잘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의미도 된다. 나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해보고 싶은 일도, 잘하고 싶은 일 또한 있다. 그중 아유르베다가 중심에 있다. 언젠가는 나를 바꾸고, 제일 어려운 남을 변화하는 일 또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날을 위해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하는 내가 되려 한다. 언젠가 또 실패해서 우울해하고 울상을 하고 있는 나를 만난다면 등 한 번 토닥여주길 바란다. 그 힘으로 또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리 말해야겠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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