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인의 결혼식에서 정말 멋진 축가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성악가가 축가를 했는데 축가가 멋있으면 결혼식이 이렇게 기억에 남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준비하게 됐을 때 축가만큼은 누구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축가 필요하면 이야기해, 란 말을 듣기도 했지만 감사한 마음과는 달리 쉽게 결정을 내리진 못했다. 난 축가가 정말 멋지거나, 정말 의미 있길 바랐다.
그러던 중 J가 이클립스의 소나기란 곡을 들었는데 축가로도 참 좋겠더라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며칠 고민 후 이야기했다.
"그럼 그 노래로 오빠가 축가를 해보는 건 어때?"
J는 잠시 망설이더니 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보컬 수업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는 내 생각보다 진지했고 진심이었다. 단지 내 커뮤니티 프로그램 중 보컬 레슨이 있던걸 생각해 냈다. 그다음은 일사천리. J는 악보를 다운로드하고 두 달 가득 주 2회씩 보컬 레슨을 받으며 노래를 다듬어 나갔다.
J는 틈만 나면 노래연습을 했다. 설거지를 하며, 샤워를 하며, 짬이 나면 부엌 식탁 앞에 서서. 야근이나 회식을 하고 온 날이면 연습이 부족했다며 드레스룸에 들어가 문을 닫고 고음을 연습했다. 원래도 노래를 퍽 잘하는 편이었지만 코칭을 통해 노래가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식 당일 J는 하나도 떨지 않고 정말 멋지게 축가를 완창 했다. 립싱크를 하는 줄 알았다던 후기와 처음 본 내 친구의 남자친구로부터 다음번에 꼭 노래방에 같이 가보고 싶다는 고백(?)도 들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가사를 잠시 까먹어 개사를 했다고 하는데 두 달간 매일 그 노래를 듣던 나도 모를 만큼 잘 대응했다.
사실 J는 어린 시절 학교 합창단에서 독창을 맡을 정도로 노래를 잘했다고 한다. 주변의 부러움과는 달리 본인은 정작 주목받는 게 너무 싫어 항상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지만. 그런 성향은 커서도 그대로여서 이번에 축가를 보고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이 왜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냐며 다들 놀랄 만큼 주변 지인들에게는 노래를 잘 안 들려주던 그였다.
그런 그가 용기를 내어 축가를 할 마음을 먹고, 또 내 마음을 알고 멋진 공연 같은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써주어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였을까, 난 이번에 축가를 들으면서도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으며 손물결까지 만들었다. 덕분에 결혼식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오신 하객분들이 좋은 시간이었다며 칭찬해 주시는 결혼식이 되었다.
그의 노래실력을 브런치에 못 담는 것이 아쉽다. 대신하여 축가였던 이클립스의 소나기 가사를 남긴다.
이클립스 - 소나기
그치지 않기를 바랬죠 처음 그대 내게로 오던 그날에 잠시 동안 적시는 그런 비가 아니길 간절히 난 바래왔었죠
그대도 내 맘 아나요 매일 그대만 그려왔던 나를 오늘도 내 맘에 스며들죠
그대는 선물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홀로 선 세상 속에 그댈 지켜줄게요 어느 날 문득 소나기처럼 내린 그대지만 오늘도 불러 봅니다 내겐 소중한 사람 Oh
떨어지는 빗물이 어느새 날 깨우고 그대 생각에 잠겨요
이제는 내게로 와요 언제나처럼 기다리고 있죠 그대 손을 꼭 잡아줄게요
그대는 선물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홀로 선 세상 속에 그댈 지켜줄게요 어느 날 문득 소나기처럼 내린 그대지만 오늘도 불러 봅니다 내겐 소중한 사람
잊고 싶던 아픈 기억들도 빗방울과 함께 흘려보내면 돼요 때로는 지쳐도 하늘이 흐려도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그대는 사랑입니다 하나뿐인 사랑 다시는 그대와 같은 사랑 없을 테니 잊지 않아요 내게 주었던 작은 기억 하나도 오늘도 새겨봅니다 내겐 선물인 그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