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하고 진지했던 지인의 사회
부담감과 책임감이 유쾌함과 진정성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인연을 맺고 있는 신랑 신부의 후배이자 친구인 K라고 합니다. 제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던 시절 저의 재능을 알아봐 준 사람들입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기꺼이 사회자를 맡게 되었습니다. 생애 첫 사회인만큼 틀리더라도 많은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결혼식 사회를 맡아준 지인은 결혼식을 이렇게 시작했다. 고민이 컸던 축가와는 달리 사회자 선정은 단숨에 진행됐다. 위트와 센스,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K가 맡아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고 K는 듣자마자 '갈기죠(?)'라며 흔쾌히 응했다.
대본을 완성해 보내고 몇 번 의견을 주고받았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부담을 느낀다는 느낌을 못 받았는데, 식 당일 아침 이동하며 건 전화에 K는 한숨도 못 잤다며 푸념을 했다. 책임감을 너무 심하게 느꼈다면서 밤새 내내 대본을 보고 또 보고, 어색한 부분을 수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J에게 이벤트를 하나 준비했으니 잘해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J는 약간 당황했지만 해보겠다고 말했다.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으며 우린 이제 K의 시간이라며 잘할 수 있을 거라며 응원했다. 모두 진심이었다.
K가 준비한 이벤트는 내 이름 석자로 하는 삼행시였다. 신부 들고 스쿼트 하기 등을 예상했던 J는 삼행시에서 철저히 무너졌다. 덕분에 무대와 객석 모두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진지했던 분위기가 환기되는 효과가 있었다. K는 그것 외에도 대본의 큰 틀은 유지하되 좀 더 자연스러운 진행이 되도록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수정한 것 같았다. 믿고 맡긴 보람이 있었다. 물론 아빠의 덕담이 끝난 줄 알고 도중에 순서를 넘어가려고 하는 등의 소소한 실수가 있었지만 그것마저 추억이 되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K에게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우는 소리로 본인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 사회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매우 매우 부담되고 책임감이 느껴지는 자리였다고 이야기하며 K는 지친 숨을 내쉬었다. K가 느낀 부담감과 책임감은 유쾌함과 진정성으로 바뀌어 신랑신부인 우리에게도, 혼주분들에게도, 하객들에게도 전달됐다. 친구가 사회도 잘 보더라~ 란 이야기도 꽤 많이 들었으니 말이다.
우리의 결혼식은 마치 가내수공업 같았다. 신랑신부, 혼주, 친구, 지인이 각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었더니 각 시간이 합쳐진 결혼식이 의미 있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내 결혼식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책임감 있게 사회를 이끌어준 K는 전체 식을 이끈 중요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