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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보라니까 Nov 12. 2023

#23. 천 개의 파랑

천선란 / 허블

언어는 대상을 규정짓는다.

하늘은 파랗고 땅은 푸르다 이런 식으로 규정된 대상은 그 언어 담론 속에서 파랗고 푸르게 된다. 그러나 언어의 규정력은 뜻밖에도 매우 허술해서 그 틈새를 보는 사람들은 예술을 만들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창조를 이끌어 낸다.


"천 개의 파랑"은 우연한 실수로 담론의 그물 사이를 보게된 로봇의 이야기다. 책 표지는 파란 색으로 규정된 하늘과 로봇 콜리에게 보이는 하늘을 매우 잘 대비했다. 천 개의 단어밖에 기억할 수 없는 칩을 가진 콜리이지만, 하늘색은 파란 색 하나로 규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늘의 색깔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의 숫자가 그가 가진 모든 단어보다 천 배는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천 개의 천 배 즉 백만개 단어라면 모든 하늘의 색깔을 나타낼 수 있을까? 표지에 있는 콜리의 하늘에는 새가 날아가고 있다. 하얀 새가 날고 있는 하늘은 그렇지 않은과 다른 단어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정하고 따뜻한 책이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그들을 돕고자 하는 저자의 따뜻함이 책 구석구석에 있다. 그러나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고 하는 앞 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에서 인지부조화를 느낀다. 비주류가 된 인간군집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존재들이 바로 그들일 것이니까.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하는 투데이와 콜리에게서 느껴지는 생명과 로봇의 공존과 공감이 아름답다. 그러나 느리게 달린다는 것은 지금의 지위와 위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인간이 느리게 달리기 시작한다면, 지금 존재하는 80억 인간 개체를 생존하게 하는 시스템이 느려지고 결과적으로 어떤 존재들은 사라져야 할 운명에 처한다. 아름다운 공존은 희생 혹은 포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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