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삼,십대 0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헤이 Mar 24. 2022

삼,십대 ep.6

호 그리고 불호


회사 후배를 보며 세대차이를 느꼈다. 그 애는 늘 호불호가 명확하다. 어떻게 저렇게 본인의 생각에 확신을 가질까 신기할 정도로.






이십 대 땐 좋아하는 게 참 많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개인의 취향을 숨겨야만 하는 사회에 너무 찌들었던 탓일까.

지금은 좋아하는 것이 기억나질 않는다.


일하는 게 싫은데 일하는 게 좋을 때도 있다.

이건 좋아하는 걸까 싫어하는 걸까.


아침보단 밤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밤보다 아침이 더 좋을 때가 있다.

하지만 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을 여전히 이해한다.


커피보단 술을 더 좋아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술보단 커피가 좋다.

하지만 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있다.


가족보단 친구가 더 먼저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친구보다 가족이 먼저다.

하지만 친구가 먼저인 사람도 존중한다.


악인이 악인이 되고 싶어서 악인이 된 건 아닐 거라는

이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다.


나의 호는 애매모호하다.

확실한 것이 없어, 무엇이 좋다고 확신할 수 없다.




불호


싫은 건 참 정확히 알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뭐가 싫다 입 밖으로 꺼내지를 못해

겉으로 보기에 나는 싫어하는 게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어른이 될수록 "싫어요"라는 말이 왜 이리 어려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가면 빨리 끝날 얘기에,

싫다고 덧붙이다 보면 끊임없이 이유를 설명해가며 청자를 납득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게 되어 그저 싫은 게 많은 예민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뿐.


나는 이런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싫다.

싫어하는 것을 마음껏 싫어하기 위해,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는 모순덩어리.


나의 불호도 역시 애매모호하다.


여기서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호불호가 명확한 것도,

애매모호한 것도 그 어느 하나 틀린 게 아니라는 것.

이전 05화 삼,십대 ep.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