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그리고 불호
회사 후배를 보며 세대차이를 느꼈다. 그 애는 늘 호불호가 명확하다. 어떻게 저렇게 본인의 생각에 확신을 가질까 신기할 정도로.
호
이십 대 땐 좋아하는 게 참 많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개인의 취향을 숨겨야만 하는 사회에 너무 찌들었던 탓일까.
지금은 좋아하는 것이 기억나질 않는다.
일하는 게 싫은데 일하는 게 좋을 때도 있다.
이건 좋아하는 걸까 싫어하는 걸까.
아침보단 밤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밤보다 아침이 더 좋을 때가 있다.
하지만 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을 여전히 이해한다.
커피보단 술을 더 좋아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술보단 커피가 좋다.
하지만 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있다.
가족보단 친구가 더 먼저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친구보다 가족이 먼저다.
하지만 친구가 먼저인 사람도 존중한다.
악인이 악인이 되고 싶어서 악인이 된 건 아닐 거라는
이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다.
나의 호는 애매모호하다.
확실한 것이 없어, 무엇이 좋다고 확신할 수 없다.
불호
싫은 건 참 정확히 알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뭐가 싫다 입 밖으로 꺼내지를 못해
겉으로 보기에 나는 싫어하는 게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어른이 될수록 "싫어요"라는 말이 왜 이리 어려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가면 빨리 끝날 얘기에,
싫다고 덧붙이다 보면 끊임없이 이유를 설명해가며 청자를 납득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게 되어 그저 싫은 게 많은 예민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뿐.
나는 이런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싫다.
싫어하는 것을 마음껏 싫어하기 위해,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는 모순덩어리.
나의 불호도 역시 애매모호하다.
여기서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호불호가 명확한 것도,
애매모호한 것도 그 어느 하나 틀린 게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