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일을 좋아했으면, 좋아하는 일을 잘했으면
사십대들이 출연하는 연애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들의 이삼십대에는 연애보다 일이 우선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직업에 프라이드를 갖고, 여전히 열정적으로 임하는 그들의 태도가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금 나의 일을 대하는 태도는 안녕한가? 나의 사십대는 저렇게 뜨거울 수 있을까?
잘하는 일을 좋아했으면, 좋아하는 일을 잘했으면
늘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말이 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는 말.
무작정 저질러버리는 행동력은 나의 몫이었지만,
때마침 찾아오던 기회는 운 덕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좋아하는 일이 아닌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운이 따라왔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직업을 가지게 되기까지 다양한 교육기관을 거치며 많은 지망생들을 만났다.
그중엔 엄청난 열정으로 두각을 나타내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이 직업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뜨거웠다.
그 친구들에 비하면 내 열정은 너무도 보잘것이 없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그런 온도.
이런 내가 어째서 가장 오래 남아있는 편에 속할까?
그들만큼 이 직업을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자격이 있을까?
회상의 끝엔 좀 씁쓸한 맛이 났다.
좋아하는 일이 아닌 그저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바라 왔던 현실에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쓸 수 없음에 씁쓸하다.
크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잘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나름의 쾌감도 있었고,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기에 실망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밥벌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버텨왔다.
지금까지는 이 정도로 충분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계속 직업의식이 결여된 상태로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몹시 혼란스럽다.
부디 삼십대의 끝에선 이 고민도 결말을 지을 수 있기를.
잘하는 일을 좋아하게 되거나,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거나.
겨우 말의 앞뒤만 바뀌었을 뿐인데,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생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