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산 이유 그리고 운수 나쁜 날
마음이 참 심란한 요즘. 편지를 쓰는 택시 방송을 보고, 기사님이 엮어낸 책 한 권을 샀다.
책을 산 이유
<길 위에서 쓰는 편지>라는 책이었다.
그 책 속엔 그날그날 택시에 탑승한 승객들 저마다의 고민이 담겨있다.
그 고민 속에서 위로를 찾고 싶어, 더 볼 것도 없이 책을 구매했다.
혼자 이겨내는 힘이 부족한 나는,
어느 순간 누군가의 불행에 기대어 이겨내는 버릇이 생겼다.
"아 나만 힘든 건 아니야.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네"
그렇게 타인의 불행과 나의 불행을 저울질하며,
내 불행의 사이즈를 줄이고자 했다.
과연 고민과 불행에도 크기가 있을까?
당사자 본인이 죽을 만큼 힘들었다면
누군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고민도,
누군가에겐 거대한 고민일 텐데.
처음엔 '내가 왜 이 불행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하고 세상을 탓했다.
상처를 준 제공자를 탓했다.
오로지 내 입장만, 내 아픔만 생각했다.
과연 나는 그 사람을 탓할 만큼 떳떳할까?
나도 누군가에겐 불행을 안겨줬을 텐데.
생각의 흐름이 이어지고 이어져 결국 그 화살은 또 나를 향했다.
삶은 너무 복잡하다.
미세한 순간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내가 가해자가 되기도, 내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냥 흘려보내면 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꼬리를 물고 늘어져 불행한 생각들이 줄을 잇는다.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줬던 많은 사람들에게 사죄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나 벌 받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에게 상처를 준 상대가 너무도 미운데,
스스로 떳떳하지 않아서 마음껏 미워할 수가 없다.
내가 준 상처들이 다시 내게 돌아오는 것 같아서.
삶은 지옥 같다.
현생이 천국이라면, 이런 고통스러운 순간이 생길 리 없잖아.
애인은 내가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 속으로 너무 깊게 파고들어
스스로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고 했다.
그냥 그랬던 거뿐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머리로는 생각을 멈춰야지 하는데, 마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고통의 순간을 시뮬레이션하며 스스로에게 벌을 내렸다.
운수 나쁜 날
죄를 지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 벌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 꼭 받아야 하는 벌이다.
지은 죄는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나는 지금껏 탈피하기에 급급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운수가 나쁜 걸까.
살면서 이렇게 운수 나쁜 날은 처음이라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운이 나쁠 수가 있는지 하다 하다 엘리베이터까지 내 말을 안 듣는다.
앞으로는 잘살아볼게요.
제 행운 좀 돌려주세요 하늘님.
올해의 액땜은 오늘 다 한 걸로.
그래도 오늘 덕분에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하루가 될 것 같다.
결국 오늘도 생각의 블랙홀 속에 갇혀,
정작 본질은 희미해지고 또 감정과 감상만 남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