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사랑한 쪽
'더 많이 사랑한 죄인'이라는 말이 있다. 더 많이 사랑한 죄로, 죄인들은 많은 것을 내어주고도 그만한 보답은 받지도 못한 채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벌을 받고 있다.
더 많이 사랑한 쪽
늘 더 많이 사랑한 한쪽이 관계에서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의 무조건적인 이해와 양보가 사랑받는 이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해왔다.
부모 자식 관계가 됐건, 친구 관계가 됐건, 연인 관계가 됐건.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의 불합리한 희생이 그저 상대보다 사랑하기 때문에
감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타협점이라고 치부했다.
나만 알던 이십 대 때는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했지 상대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보잘것없는 나를 바라봐주는 고마운 마음을 천대했고,
작은 사랑을 주고 큰 사랑을 받는 게 되려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바라는 것도 없이 오롯이 나를 사랑해주던 소중한 이의 마음에 생체기를 냈다.
역지사지는 늘 옳다.
목적성을 가진 인간관계로 점철된 삼십대의 삶을 살아보니,
이제야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바라봤던 사람보단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을 찾게 되고,
사랑이 가면 사랑이 오는 관계에 더 큰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일방적인 사랑에 에너지를 쏟기 위해
사랑하는 이는 무엇을 포기하고, 어떤 감정으로 임하는지.
그 희생의 값어치를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보니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고 싶은 몇몇이 떠오른다.
사실은 사랑하는 쪽이 늘 이겨왔던 건 아닐까?
후회는 최선을 다한 사람이 아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이니까.
왜 그때 이유 없이 사랑해주던 그 예쁜 마음을 외면했을까.
사랑을 그대로 받을 수 없던 아둔한 나를 탓하며,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준 소중한 이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