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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Jan 04. 2025

서울, 전시회 속 놀이터를 묻다

영감의 원천은 찬드라반 아이들로부터 온다

(1) 서울에서 준비한 놀이터 전시회

2020년 1월 말, 인도에서 한국 땅으로 돌아온 순간, 현실은 날카롭게 나를 맞이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밀려드는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고, 눈앞은 캄캄했다. 찬드라반 마을의 따뜻한 햇살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한때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느꼈던 그곳과 달리, 한국에서의 현실은 나를 막막함으로 몰아넣었다. 그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찬드라반 마을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답은 어쩌면 너무도 단순했다. 나에게 가능한 방법은 단 하나였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것.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캔버스를 펼치고 붓을 잡았다. 아이들의 얼굴, 그들의 웃음, 그들의 손길을 떠올리며 나는 붓끝으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보고 싶은 만큼, 떠오르는 만큼 캔버스 위에 색들을 흩뿌렸다. 색은 곧 내 감정이었다. 그리움은 다양한 색깔로 번져갔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찬드라반과 함께 걸었던 지난 이야기를 담은 전시, ‘What is your playground?’.


처음 인도 찬드라반에 갔을 때, 나는 '꿈'이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하던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질문이 가득했다. 나는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2013년부터 7년간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공간인 놀이터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이번 전시는 그 시간들을 한데 엮은 이야기였다.


2020년 5월 14일부터 31일까지 2주간 열린 이번 전시는 7년에 걸친 찬드라반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찾는 여정을 담아냈다. 이 여정은 단순한 탐구가 아닌,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공간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전 세계를 누빈 시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고민과 통찰, 그리고 이야기가 관람객들에게 영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전시 작품들은 회화, 사진, 설치, 텍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되었으며, 각 매체는 놀이터라는 주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창이 되어주었다.


(2) 마음 한편을 담은 작업들

Chandrabhan(찬드라반)

첫 번째로 선보인 50호 크기의 작품 Chandrabhan(찬드라반)은 그 이름처럼 찬드라반 마을에서 느꼈던 모든 감정을 온전히 담아낸 작업이다. 이 작품은 어떠한 형식적 구애도 받지 않은 채, 내가 마을에서 경험했던 기쁨, 슬픔, 분노, 웃음, 그리고 눈물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캔버스로 옮긴 결과물이다. 넓은 캔버스 앞에서 말과 생각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에 몸을 맡긴 채, 붓은 나와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품은 찬드라반과 내가 처음 만났던 순간, 그리고 그들과 함께 미래의 놀이터에서 뛰어놀 상상을 담아낸 기록이다.


작품의 의미를 풀어보면 검정선은 나의 자아를 배경의 색채는 찬드라반에서 만난 사람들과 느꼈던 감정을 상징한다. 거칠고 딱딱했던 나는 찬드라반 안에서 그들의 다채로운 색을 만나 점차 부드러워졌고, 자유롭게 춤을 추는 듯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이 작품은 나와 찬드라반이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과정을 담아낸 하나의 시각적 고백이다.


왼쪽부터 Rosenly(로슨리), Sunny(써니), Chandni(짠드니)

Rosenly(로슨리)라는 제목을 지닌 이 작품은 내 마음으로 낳은 딸, 로슨리를 위한 그림이다. 지난 브런치에 올린 글 가슴으로 낳은 딸들을 보면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잘 담겨 있다. 작품 속 검정선은 로슨리 안에서의 나를 그리고 배경 또한 그 아이를 생각하며 그린 감정을 상징한다. 특히나 그릴 때 아이의 어리디 어린 해맑은 시간이 이미 지나가고, 아픈 현실을 지나온 깊고 둔탁해진 눈망울을 떠올렸다.


전시가 열리는 동안 나는 많은 관람객들에게 로슨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그녀가 11살의 나이에 이른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표정들을 볼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로슨리의 결혼을 막기 위해 내가,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그 질문은 전시 기간 내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두 번째 작품은 Sunny(써니)인데 써니는 부끄러움 많고 순진한 아이이며 브런치에 쓴 글 너는 블랙매직이 아니야 의 주인공이다. 마치 갓 짜낸 우유처럼 순수한 아이였고, 어린 시절부터 초록빛의 자연을 쫓아다니던 써니를 생각하면서 그렸다. 써니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녹아내리는 기분이 드는데, 어떤 무거운 일이 생겨도 항상 웃음으로 먼저 대답해 주는 아이였기 때문이었을까? 희망을 가득 품은 써니와 함께 있으면 나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다정해지고, 따뜻한 빛으로 물들게 된다.


세 번째 작품은 Chandni(짠드니)이며 짠드니는 로슨리의 동생이고 동시에 나의 마음으로 낳은 두 번째 딸이다. 캔버스 위에서 나는 검정선으로 아이를 감싸는 울타리를 그렸다. 그 울타리는 단순히 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 담겨있다. 짠드니가 가진 맑고 순수한 에너지를 보듬으며 언제나 따뜻하고 밝게 자라길 바라는 소망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3) 마음 한편을 담은 작업들

설치 작업(1)


전시를 준비하는 내내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작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수십 번, 수백 번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내 들면서도, 매번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 나 자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이미 내 안에 그려져 있다.' 그 말이 내 안에 조금씩 용기를 심어주었다. 찬드라반 마을의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을 떠올리면,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내 입으로, 내 손으로 전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작은 바람으로는 전시장 안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워지길, 잠시라도 세상의 모든 울타리를 벗어나길 바랐다. 제약 없는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놀이터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전시장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지난 몇 년간 그려온 놀이터의 습작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듯했다. 스케치, 작은 모형, 그리고 공책 가장자리에 적힌 메모들까지, 모든 것이 마치 하나의 대화처럼 공간 속에 흩어져 있었다. 관람객들이 그 사이를 걸으며 눈길을 주고, 발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 놀이터는 책 읽는 곳이었어요.”
“방바닥에 누워 가만히 창밖을 보던 시간이요.”

“엄마가 만들어준 따뜻한 밥상.”
“친구들과 소리 내 웃던 여름날 오후.”
“어릴 적 집 앞에 있던 녹슨 그네.”


각자 다른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지며 전시장은 작은 연못처럼 잔잔하고 따뜻한 공감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자신만의 놀이터가 다시 열리는 것만 같았다. 전시를 준비하며 품었던 모든 부끄러움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4) 당신을 향한 질문: What is your playground?

설치 작업(2)


지난 7년, 나의 시선은 찬드라반 마을로 물들어 있었다. 그곳은 마치 꿈을 향해 열려 있는 거대한 놀이터 같았다. 나는 그 놀이터 안에서 마음껏 뛰놀며 살아갈 이유를 찾아갔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며, 삶이 품고 있는 가장 순수한 질문들에 마주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해 보일지도 모르는, 또 어떤 이에게는 너무 연약해 보일지도 모를 질문들. 하지만 그 질문들이야말로 나를 숨 쉬게 했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관람객들에게도 그 질문을 건네고 싶었다.

 

"What is your playground?"

이 질문을 당신에게도 건넨다. 당신의 놀이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은 얼마나 자유로운 가요?


(5) 관람객들을 통해 성장하다

관람객 후기 중

2020년 2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찬드라반 마을을 직접 방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과 찬드라반의 아이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이 전시는 단순히 내가 만든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와 아이들의 추억이자, 관람객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놀이터를 열어주는 작은 시작이었다. 오늘의 글은 관람객 중 하나였던 노엘씨가 로슨리의 그림을 보고 쓴 시로 마무리를 한다.



당신의 꽃 - 노엘


당신의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람과 햇빛과 거름이 되는 당신 때문이요

꽃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당신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머금은 눈망울 꽃이 흔들리면

당신도 나도 슬퍼지는 까닭은 꽃의 아름다운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포기하지 않는 일입니다

꽃이 슬프다고 불행한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꽃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살아가게 함이 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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