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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 yet Oct 09. 2024

에브리바디 킁킁.



Emotional scent.


나는 다분히 감성적인 사람이다. 특히나 눈물이 많아서 매일 울다시피 하는데, 별일도 아닌데 눈치없는 눈물이 먼저 마중을 나온다.


우울증인가 싶다가도, 타고난 흥이 많아 시도 때도 없이 어깨를 들썩인다. 그래서 또 조울증을 의심해보지만 잠들기전 소박한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걸 보며, 이러쿵 저러쿵 잘 살고 있구나 싶어 안심한다.


버터, 꿀, 커피, 빵, 향수, 비누처럼 향기나는 물체에 쉽게 매료되어 무턱대고 코를 내어준다. 스치는 바람결에도 화학적 향기가 진동하는 리얼 코덕인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킁킁대도 향기가 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치 물을 안은 것처럼 맑고 투명해서 어떤 향도 담을 수 없는 사람이다.


왠지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묽게 희석 될 것 같은 수분감이 엄습한다.



오늘은 기온이 제법 올랐다.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서 자주 가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심코 한 상점 앞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맡아본 향기가 코 끝을 스쳤다.


발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그곳에 서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마치 타임 머신이라도 탄듯 지난 기억 속으로 순간 이동을 한 것이다.


향기는 탑승 동의 같은건 구하지도 않고서, 시간의 흐름을 쉽게 바꿔버린다.



벚꽃이 우수수 떨어지는 계절이었다. 경주의 한 호텔로 출장을 갔는데,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와 걷고 있었다.


유난히 봄바람이 짙게 일렁거렸다. 바람이 파도칠때 마다 초록 잔디 위로 연분홍 하트가 뚝뚝 떨어졌다. 마치 잔디 풋내와 흙 냄새가 꽃잎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누군가에게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차갑게 건네야만 했다. 통화 내용 때문이었을까, 여기저기로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 잎이 그렇게 슬퍼 보였다.


상점 앞 흙냄새, 풀냄새, 벚꽃 향기가 지난 기억속의 잊혀진 봄 날로 나를 초대했던 것이다. 



또 어떤 날은 친구와 늦은 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지나치는 남자에게서 담배 냄새가 났다. 그순간 몸서리치게 좋아했던 잊혀진 추억 속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물론 지금 내게 의미가 있거나 자주 생각나는 이가 아닌데도 말이다.


이처럼 향기는 시간의 흐름을 쉽게 넘나드는 타임키퍼의 능력을 가졌다.



어린 시절에는 잊고 싶은게 많았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기억을 잊는 것보다,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커지는 것 같다. 소중한 순간을 기억나게 하거나, 절절하게 그리운 시간을 간직한 향기가 있다는 게 오히려 고마운 시절을 맞이한 것이다.


글을 적고 있는 나에게 이곳의 정체가 뭐냐고 묻는다면 오늘은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향기나는 것들에 심하게 흔들리는 코린이들과 향기가 없는, 그래서 모든 향이 될 수 있는 투명한 이들의 코에 영감을 주는 잔잔한 글향을 적는 공간입니다.' 라고.


예민한 코와 눈을 가진 덕에 일과 삶에서는 유리한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글을 맛깔나게 적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다만, 어설픈 나의 글 군데군데에서 좋은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바람을 가져볼 뿐이다.


'애브리바디 킁킁' 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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