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한두 달에 한 번꼴로 어른들의 도시 '도쿄'로 날아가곤 했다.
저가 비행기를 미리 예약하면 기차비 정도로 부담없이 갈 수 있는데, 취소가 안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무조건 일정에 맞게 떠나야만 했다.
2년 넘게 틈만 나면 가다 보니 즐겨 가는 공간이 생기고, 자주 먹는 음식도 생겼다. 음식점 주인과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 받은적은 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공짜로 얻은 선물 같았다. 그래서일까 종일 쏘다니며, 알뜰하게 시간을 쓰고 나서야 지친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호텔로 가는 길에 허름한 꼬치집이 하나 있는데, 늦은 밤이면 안개라도 낀듯 염통과 닭 꼬치 연기로 골목 안이 가득 찼다.
유혹적인 숯불 냄새에 이끌려 매일 밤 염통 꼬치와 맥주 한 캔을 사들고 가는 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도쿄, 그곳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거나 딱히 만날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굳이 특별한 이유를 말하자면 도쿄는 내가 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해외 여행지였고, 영혼의 비루함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비밀의 장소이기도 했다.
사실 도쿄는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도시기에, 시들하고 식상한 곳 일 수도 있다. 반일 감정으로 미운 톨이 단단히 박힌 일본의 오래된 수도이기도 하다.
지인 중에는 일본에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을 자주 자랑삼아 말하는 이가 있다. 과거 일본의 만행을 용서할 수 없기에 일본 여행조차 절대 가서는 안된다는게 그 이유다. 비록 그녀와 같은 시선은 아니지만, 결의 만큼은 존중하고 싶다.
누구나 위로가 필요하거나, 일탈을 꿈꾸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 특정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즐겨 찾는 이상적인 시간이 존재한다.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친구를 만나 폭풍 수다를 떨거나, 종일 잠을 잔다던지 사람마다 다양한 ‘시간 처방’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도쿄라는 도시가 그러했다.
외로움에 몸부림칠 만큼 정적이 흐르고, 낡고, 단순한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처럼 차갑게 정제된 도시.
그 시절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되지 않는 지독한 문제들과 매일 싸워야만 했다. 치열한 전투를 치르던 나에게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은신처가 되어 주었다.
꾹꾹 눌러 담다 결국 숨쉬기조차 어려운 장면을 만날 때면, 여지없이 도쿄로 날아가 며칠씩 입과 귀를 막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지냈다.
아무리 다녀도 낯선 공기, 말을 건네는 사람도 없고, 먹을 때 말고는 입을 열 일이 없었다.
"인간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_파스칼_팡세
그곳은 무심한 공간이자, '혼자만의 방'이었다. 누구와도 엮이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버틸 수 있게 도와준 낯설고 차갑고, 그래서 고마운 도시.
어쩌면 그 시절,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해서,
모든 게 간절했고, 자주 불행했고,
많이 아펐던 게 아닐까.
도쿄가 난데없이 그립다.
그렇게도 사랑해서,
그렇게 사랑한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