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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 yet Oct 09. 2024

'Oh! my butter'



Butter.


나는 물기를 가진 부드러운 고체 덩어리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조약돌처럼 제대로 딱딱한 것은 아니다. 버터, 비누, 카라멜 같이 대부분 뜨겁게 데우면 대책없이 녹아버리는, 힘 없고 부드러운 존재들이다.


그중에서 특히나 버터를 좋아한다.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 좋아한다고 적었지만, 뭔가 심심한 표현처럼 들린다. 그렇다고 즐겨먹는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게 자주 먹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물리지 않게 간격을 두는 것 일 수도 있다.


주로 야채를 볶을 때 쓰거나 식빵에 발라 먹는다. 대부분 무염 버터를 먹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짭짤한 가염 버터를 먹기도 한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가염 버터를 좋아하지만 몸에 무염이 좋지 않을까 싶은 소심한 우려 때문이다.


페이장브레통 가염 버터(Paysan Breton, Le Beurre Moule, Demi sel)


해외 여행을 가면 면세점에 들러 화장품, 옷, 영양제 같은걸 사거나 초콜릿, 사탕, 껌 같이 쓸 때 없이 아기자기한 것들을 산다.


가끔씩은 아울렛에 들러 매장을 휘집고 오는 경우도 있다. 사실, 그 맛에 떠나는 게 아닐까.


마침 계절이 겨울이면 버터를 꼭 사온다. 묵직한 게 무게도 꾀 나가고,(여행에서 무게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조금만 손품을 팔면 쉽게 살텐데 번거로운 일을 굳이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가장 유력한 추측은, 버터의 포장지들은 필요 이상으로 감각적이고, 미각을 자극하는 몰랑한 사각형이다.(그래서 비누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타이포그라피는 왜그리 세련되고 예쁜지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여러 개의 버터가 장바구니 안에 얌전히 담겨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말을 건낸다. '기회는 지금 뿐이에요, 나를 꼭 가져가세요.'


결국, 어느 것 하나도 뺄 수 없어진다. 모두 남다른 표정을 짓고 있기에.(음, 이 녀석들 봐라...)



한동안 키토식을 한다며 삼시 세끼 버터를 사용한 적이 있다. 혹여 살이 찔까 싶어 '지방의 오해'와 같은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운동과 병행하지 않은 나의 무식한 키토식은 중도 포기로 끝이 났지만, 원 없이 버터를 먹어본 시간이었다. 우유, 요플레 같은 유제품을 좋아하지 않지만, 치즈나 버터같이 풍미가 좋은 식품들은 모른척 할 수가 없다.


이런 고체 덩어리들은 미각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


버터를 생각하면 늘 기내식이 떠오른다. 비행기 안에서 제공하는 음식이 고만고만하지만, 노란 고체 덩어리는 뭔가 다르다. 평소 즐겨 먹지도 않는 모닝빵과 작그마한 큐브 버터는 어떤 비행기를 타도 등장하는 베스트 커플이다.


그래서인지, 모닝빵에 버터를 발라 먹을 때면 마치 해외여행이라도 가는 것 처럼 마음이 들뜨고 설렌다.


'두근 두근'


라꽁비에뜨 가염 버터(La Conviette Beurre, Charentes-Poitou A.O.P, Demi-sel)


냉장고에 버터가 떨어지는 날은 뱃속이 허전하다. 쌀독에 쌀 떨어진 기분 같다고나 할까. 쟁여두어야 행복한 맛이 있다.


나는 인터넷 쇼핑을 즐기지 않는데, 버터를 사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하는 편이다. 세상의 모든 버터를 먹어보고 싶은, 물렁거리는 욕구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노랗고 고소한 버터가 빵에서, 고기 위에서,

슬그머니 녹아내리는 모습은

가히 경이롭고 아름답다.


'Oh! my bu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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