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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마주할 시간

결혼이라는 문 앞에서

by 세성

부모님의 부재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내 결혼식'이라는 무대에서 다시 현실이 된다.








"아버지가 몇 년생이신데?"

"형제 있어?"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의례 묻는 질문이 있다. 그 물음에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갈팡질팡했다.

처음에는 솔직했고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할머니랑 둘이 살아요. 부모님은 이혼하셨고요. 동생 둘 있어요."

"부모님은 서울에 계세요. 외동이고요."

"고향에서 농사짓고 계세요. 형제는 없고 혼자예요."


어릴 때는 숨길 게 뭐 있나 싶어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땐 아무렇지 않았다.

내 대답을 들은 상대방의 어색한 침묵도 잠깐이었다.

나이가 들자, 그런 솔직함은 상대에게나 나에게나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사정을 구구절절 말하기에 입이 아프고, 그 어색함이 이제는 싫어졌다.

직장은 말이 많은 곳이다. 그저 일만 잘하고 그럭저럭 무난하게 관계를 맺으면 되었다.

어차피 나는 타지에서 일하는 상황이었고 내 말 한마디면 누구도 확인할 길이 없이

기정사실화 되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쯤은, 그러니까 외동이라는 설정쯤은 내가 할 수 있는

거짓말 중 가장 정당한 것이었다.


그게 편했다. 더 이상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깔끔한 상황종료.

그러나 마음만은 온전히 편하지 않았다.

어느 곳에 가도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부모님 이야기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침묵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그런 상황은 내 선에서 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몇 초만 지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일이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연애를 하고 몇 달 지났을까, 애인이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는 전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한 마디로 끝낼 수 있었다.


"난 아직 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결혼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1년 전에는

'결혼이 하고 싶은 걸까, 혼자 있는 게 싫은 걸까?'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워.'

'이 사람이 아니라도 곁에 누가 있으면 되는 걸까?'

하는 고민에 잠 못 이룬 날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그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면서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집안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애인 가족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부재.

그것을 온몸으로 자각하게 되는 현실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애인에게 말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부모님 대행 알바 같은 것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땐 그 말이 그렇게나 서운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그도 나의 결핍이 부끄러운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것 또한 나중에 그에게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난 상관없어, 아무래도."

라고 말했지만 나는 결혼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5년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을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는 사람은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아서 살아 계신데도 대역 썼더라고."

"부모님 대행 알바 쓰는 사람들, 꽤 있어."


그녀의 말을 듣고 나도 순간 생각했다.

'나도 그냥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눈 한 번 딱 감고 연기하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하지만 잠깐이었다.

자신이 없었다. 부모 자리를 넘어서, 하객 자리까지도 마음에 걸렸다.

마음 같아서는 친척들조차 부르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되면 어떤 눈총을 받게 될지,

어떤 이야기가 돌게 될지 불안했다.


그 상황을 만들어 낸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왜 나는 남들과 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을까.

왜 결혼조차 평범하게 준비할 수 없을까.


예상치 못한 순간마다 부모의 부재는 내 앞을 막는다.

어느 순간 불쑥, 현실로 드러난다.

결혼이라는 문 앞에서도, 나는 멈춰 선다.

결핍이 나를 가로막는다.


나도 평범하게 사랑하고, 결혼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누구나 겪는 보통의 일이 왜 나에겐 이토록 멀게만 느껴질까.

오늘도 묻는다.

결핍은 끝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평범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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