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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호사가 된 이유

by 세성

"우냐."


탈의실에서 수샘과 함께 사직서를 작성한 뒤 눈물이 흘렀다.

수샘이 울기 시작한 나를 보고 나지막이 물었다.

그리고는 딸 보듯 바라보며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전날 면담을 하면서 나를 세 번이나 설득했던 수샘이었다.

그녀는 아마 사회의 첫 쓴맛을 본 나를 짠하게 여겼을 것이다.


병동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사람들은 내가 우는지 몰랐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곧장 화장실에 가서 남은 울음을 짜내고나서야 병원 문을 나올 수 있었다.




그날을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인생 첫 퇴사.

그리고 여전히 인생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로 꼽는다.

나는 간호사가 되어 취업 한 지 한 달 반 만에 병원을 그만두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느낀 뒤로

작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친구들 따라 들어간 학급 문집 편집부에서 새로운 글을 창작하고 친구들의 글을 모아

목차를 정하고 교정•교열을 하는 작업을 한 경험이 내게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공공연히 작가가 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집에서는 취업 잘 되는 과를 가길 바랐다.

특히 큰아버지가 명절 때면 은근히 간호사가 되기를 바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간호사는 어떠냐."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전혀 생각 없다고 선을 그었었다.


내가 간호학과를 진학한 이유는 단순했다.

붙은 학교가 간호학과를 쓴 나의 모교가 된 학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 관련한 과를 지원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국어교육과와 문헌정보학과를 지원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열정 없는 대학생활을 마치고 어영부영 들어간 곳이 첫 병원이었다.

그곳도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냐면, 주변 분위기에 휩쓸린 지원이었다.

어쩌다보니 면접에 합격했고, 입사를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이후 그렇게 퇴사를 하게 된 나는 2016년 5월부터 6월 중순까지 타지 자취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2016년 여름,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임상에 미련이 있던 내가 그때 한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결론은, 아주 옳은 선택이었다.



한 톨의 미련이 가져온 병원 생활은 파란만장했다.


작은 병원이지만 가장 힘든 병동으로 들어가 여러 케이스를 접하며 간호사로서 성장했다.

성장을 위한 통장은 꽤 심했다.

주사를 못 놔서 환자에게 핀잔을 듣고

진통제를 놔도 아픈 환자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땀을 삐질거렸다.

오늘 내일 하는 환자의 곁을 지키면서는 구불거리는 모니터의 심전도와 함께

내 마음도 오르락내리락 했다.

인력 부족으로 근무표는 '가장 힘든 근무표 자랑하기'에 나가서 1등할 만큼 빠했고

덕분에 살은 더 빠져만 갔다.


어린 나이에 간호조무사들에게 지시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상당했으며,

인계에 대한 부담도 컸다.

근무 시간 내내 가장 나를 괴롭혔던 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었다.

늘 가시방석이었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가득 채워져만 갔다.



애초에 내가 목표한 임상생활은 최소 1년, 최대 2년이었다.

조금이라도 할 만하면 2년, 정 못 하겠다면 1년이라도 버티고 나오자였다.

다행히 고향에 있는 병원이라 지리적으로 익숙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괜찮은

사람들이라 2년을 버텼다.


그렇게 2년 후, 나는 광주로 올라가기로 한다.

광주에서 조금 덜 힘든 곳에서 일하며 글을 쓰기로 다짐한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글을 쓰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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