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여전히 직업의 방향성을 잡지 못해 방황했지만,
내 글이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내 글이 책으로 나온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급 문집 편집부였을 때도 글의 목차를 정하고 교정 • 교열 하는 일이 재밌었던 것처럼.
그래서 출판 편집자가 되볼까 생각했다.
그 길은 출판사라는 곳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니까 경제적으로
안정감이 있기도 했고, 편집이라는 일은 어쨌든 완성된 글을 수정하고 추가하는 일이어서,
글을 다루는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편집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알게 된 것이
한겨레교육에서 운영하는 출판편집자를 양성하는 일종의 교육과정이었다.
그곳은 등록금은 없지만, 입학하려면 서류와 면접을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걸리는 것이 있었다.
상경.
서울로 올라가는 일. 그것이 내겐 아주 큰 벽이자 과제였다.
내가 사는 지역 광주는 출판 편집자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아무런 경험도, 경력도 없는 내게 광주에서 출판 편집자로써 취업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울로 올라가야만 선택지가 보였다.
그러한 지역적인 문제는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것도, 고민해야 할 것도 많았다.
장장 4시간의 거리는 마치 글쓰는 일과 나와의 거리 같았다.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지금 이 나름대로 호화로운 생활을 정리하고, 가지고 있는 자본으로 서울에서 집을 구하게 되면
반지하나 허름한 원룸 정도일텐데, 자신이 없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서울에 올라가는 일이란 상당히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난 혼자였다. 같이 집을 알아봐 줄 이도, 서울 생활을 지지해줄 이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참아 낼 수 있는 사람인가? 그 생각만 하면, 기대도 설렘도 아닌 '두려움'이 먼저 떠올랐다.
돌아보면, 나를 막고 있던 건 단순히 거리나 자본 같은 외적인 조건만은 아니었다.
마음 속에선 늘 '나는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맴돌았고, 그 질문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섭게 내려앉았다.
혼자라는 사실은 더 큰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낯선 도시에서 나를 붙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 그 외로움까지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출판 편집자의 일상을 상상하며 유튜브를 보고, 관련 책을 읽고, 머릿속으로 수십 번 훈련했지만
현실의 나는 매번 한 발짝 앞에서 주저앉곤 했다.
마치 긴 겨울이 지나지 않아 아직은 봄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땅처럼.
그때의 나는, 어떤 가능성보다 두려움을 더 오래 품고 있었다.
현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고민은 깊어졌지만, 마냥 오래 할 수도 없었다.
생활은 이어져야 했고, 돈이 필요했다.
나는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