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이 아닌 삶이 먼저였다

by 세성

그러는 새, 나는 프로이직러, 프로퇴사러가 되었다.

갈팡질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만큼 경력도 이곳저곳 어지럽게 끊어져 있었다.

한 달 반, 석 달, 아홉 ... 병원의 종류도, 과도 다양했다. 요양병원, 종합병원, 일반병원...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건강검진센터 등 의도치 않게 다양한 경험을 했다.


지금에서야 그 경험이 굉장한 자양분이 됐지만 당시에는 '도대체 가는 병원마다 왜 이러는 걸까.'

라는 의문에 빠져 고통에 허우적거렸다.


요양병원은 급성기와는 너무 다른 인계와 라운딩 방식, 간호사의 약한 영향 등등 불편함이 너무 컸다.

건강검진센터는 대표원장의 극성과 잠깐 있었던 내시경실 사람들의 텃세가 못 견디게 힘들었고

종합병원 외래는 윗사람들의 정치질이 너무 심했다. 그 타격이 나에게까지 올진 모르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일반 병원은 오픈 병동이라 어느 정도 체계가 없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일이 너무 중구난방이었다.

답답한 원장, 차팅에만 집착하는 수간호사까지.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전업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 병원을 전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집에 와서도

인계로 인해 마음을 졸이는 일상과 외부 사람들로 인한 상처, 스트레스, 정치질의

희생양이라는 억울함 뿐이었다.

어느 곳에서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편히 일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지쳐갔다.

더욱 간호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간호사를 해야만 한다면 적어도 임상은 벗어나고 싶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삼 교대라도.


그런 바람이 보건소와 공기업이라는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보건소나 치매안심센터에 자리가 났을 때 지원을 해서 면접도 봤었다.

공기업도 원대한 꿈을 가지고 서류지원도 여러 번 해봤다.


그러나 모두 낙방이었다.

간절함 없이, 그저 임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제대 알아보지 않고 임한 면접은

합격할 자격이 부족했다.

공기업 또한 서류 검토에서 가산점을 얻기 위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과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도 없었다.


혼자서 아등바등 노력한다고 해봤지만 전부 실패였다.

이제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로서도 집중하지 못했고, 꿈에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 같았다.

자괴감은 점점 깊어졌고, 내 마음은 질퍽한 갯벌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었다.

무엇도 내 것이 아니고, 어디에도 나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시간들은 나를 글로 다시 돌아오게 했다.

완전히 부서지기 전, 나는 나를 꺼내기 위해 다시 썼다.

글이 아니라 삶이 먼저였다는 걸, 그때 알았다.



keyword
이전 03화작가가 아니라면 편집자라도 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