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치밀하게 계획해 놓은듯, 철저하게 혼자였을 때가 있었다.
물리적으로 혼자일 뿐 아니라 마음마저 혼자라고 느껴지는 서늘한 순간.
사는 이유를 찾지 못해 헤메던 날들. 너무 아프고 죽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하던 것이 있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 그래도 나는 글을 썼다.
사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그 시간의 감정과 장면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날은 아침부터 아무것도 삼켜지지 않았다. 가슴이 조여왔고, 마음이 잿빛 웅덩이처럼 가라앉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을 썼지만, 그날은 더더욱 키보드를 두드릴 수 없었다.
처음으로 내 글로만 이루어진 책을 만드는 일을 하던 중이었다. 1주일에 한 번은 글을 써서 제출해야 했다.
고민하다가 큰마음 먹고 시작한 여정이었고, 그만큼 공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만큼, 난 도저히 쓸 기운이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부질 없게 느껴졌다.
아마 복합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 그로 인해 오랫동안 묵은 불안, 기댈 곳 없다는 위태로움, 발버둥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그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뭉쳐져 어떤 일도 의미 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갑자기, '이런 순간에 글을 썼다는 것이 나중에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쓰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난 몸을 일으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달이 기운 어두운 밤 아래 하얀 오렌지 빛 조명 밑 가녀린 손가락이 글자 하나하나를 쓰다듬듯 어루만졌다.
여전히 마음만 먹으면 그 순간의 아련하고 아릿한 내 마음을 떠올릴 수 있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겐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단 하나의, 내가 지금 눈을 감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좋아하는 게 있었다.
내 꿈은 멀리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손만 뻗으면 닿을 듯,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아무리 슬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나는 슬플 때도 글을 썼다. 글은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감싸주었다. 아무도 없는 밤, 나는 글 속에서만큼은 혼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