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창 시절을 잠깐 이야기하자면, 난 뼛속까지 문과였다. 영어, 국어, 한자 등 어문계열 성적이 좋았고,
상대적으로 물리, 화학, 지구과학 등 과학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었다.
어쩌면 작가라는 꿈을 꿀 수밖에 없는 DNA를 가지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분명하게 이과계열인 간호학과를 갔으니, 당연히 심드렁할 뿐이었다.
해부학이니 뭐니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은 거리감부터 들었고
과학을 싫어했는데 생물학, 생리학을 배우려니 머리에 쥐가 났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렇게 정 반대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계속 글을 쓰고 싶었는지 모른다.
원래 인연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람이 더 그립고, 못 먹어 본 감이 더 생각난다고 하지 않는가.
어문 계열에 머물고 싶은데 이과계열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자, 청개구리 심보가
도졌던 건 아닐까? 이를 악물고 벗어나고 싶어서 더 애썼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간호학과에 진학한 그날을 인생에서 가장 후회할 순간으로 남길 줄 알았다.
죽을 때까지도 그 선택을 원망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생각은, 예상보다 쉽게 바뀌었다.
실패를 맛보고 그 안에서도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날들을 돌아보며
현실을 인정하자, 내 꿈의 형태도 달라졌다.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는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았고, 그 대신 ‘살아남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현실을 사는 것’ ‘글은 취미로 쓰는 것’ 이 두가지로 방향을 틀었다.
꿈을 포기하는 것은 들고 있던 소중한 물건을 바닷속으로 던지는 일과 같았지만,
오히려 홀가분하기도 했다.
꿈을 포기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았다. 나라는 존재의 주체가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글과 함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놓지 않는 한, 얼마든지
글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계속 하기 위해서는 간호사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간호사로 살아가는 길이, 내가 글을 쓰는 마음과 전혀 동떨어진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 가벼운 깨달음 덕분에 나는 오늘도 두 가지 삶을 함께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