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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성 Jan 20. 2024

8.또 다른 여자

배신감

벚꽃이 진 늦은 봄. 1교시가 끝나고 재연이 급하게 나를 화장실로 끌고 가더니 화장실 칸으로 들어간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당황했고 재연이 은밀하게 속삭였다.



"있잖아. 희안이랑 동현이 깨지고 해민이랑 희안이랑 사귄대~ 아침에 희안이한테 있던 그것도 해민이가 준거야."



순간 굳어버린 머리와 몸.

아침에 희안의 책상에서 봤던 건 ABC 초콜릿 한 봉지였다. 희안이 해민을 좋아하고 있다는 건 눈치채고 있던 사실이었다. 


해민이 희안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될런지, 둘이 사귈런지,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좋아해주는 사람을 택할런지 갖은 상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해민이 싫다면서 만약 둘이 사귀면 기분이 어떨까란 생각도 해봤다. 그렇게 신경쓰는 나를 나도 모르겠는 기간이 있었다.


그런데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배신감이 들었다.









영어시간.



영어책이 없어서 미리 선생님께 영어시간에 책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던 내게 이따 해민과 같이 볼 수 있게 해준다고 한 선생님. 잊지 않고 수업이 시작되자 말씀하신다.



"민아 같이 보면 안될까?"



그말이 끝나자마자 책을 내 쪽으로 내미는 해민. 그런데 잠시후 수한과 해민의 자리를 바꾸는 선생님.

책을 줄까말까 하다가 이따 주자. 하고 가만히 있던 내게 해민이 말했다.



"내 영어책."



나는 책을 돌려주려 그에게 내밀었다.



"뻥이야."



손은 민망하지 않은데 어이가 없어서 책을 든 채로 가만히 있는데 선생님이 돌려주라고 한 덕분에 돌려줄 수 있었다.








미술시간.



상상화 그린 것을 서로 평가하는 시간이다. 번호별로 네 명씩 평가를 했고 나는 B+을 받았다. 


그런데 해민은 내가 가까이 있음에도 연희에게 내 점수를 묻는다.



"두리는 뭐냐?"



"몰라. 두리야 너 뭐야?"



"B+"






방과 후.



혼자 터미널을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앞에 영석, 준호 등 그 패거리들이 걸어가는게 보였고 나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보니 영석 옆에는 윤의가 있고 해민 옆엔 희안이 있었다. 정말이었다.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 둘을 자세히 봤다. 손을 잡고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해민은 희안과 사귀는데도 내게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미술시간만 해도 굳이 내 점수를 왜 물었는지 모르겠다. 내게 마음이 있으면서 희안을 거절하지 않은 이유는 반응이 없는 나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희안 때문인지, 아니면 쓰레기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 자신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비로소 느꼈다.  내가 해민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지난 일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유건이가 몇 번이나 내 마음을 떠보았을 때 내가 긍정의 반응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무 대답 안 한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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