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하고 싶은 마음
지지부진한 해민과의 관계가 일상이 되고 있을 때 유건이 마음에 치고들어왔고, 나는 해민과는 다른 느낌의 유건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조금만 친하게 대해도 좋아하게 됐던 어린 날의 나는 이제 해민보다 유건과의 어떤 일을 기대하고 있었다.
과학시간이었다. 해민과 인성이 애들 머리에 뭘 뿌리고 있는 것을 봤지만 그러려니 하고 금이의 어깨에 기대있었다. 그런데 이윽고 유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민아 웬만히 해라."
"두리야, 장난인 거 알지?"
뒤이어 들린 해민의 말. 나는 눈치를 채고 고개를 들었다.
"두리야. 해민이가 네 머리에 뭐 뿌렸어."
장단을 맞추지 않고 해민의 행동을 말리는 유건의 태도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고 시험기간.
다시 과학 시간이 되었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이 중요단어를 정리해서 주고 그것을 외우라고 했다. 금이와 나는 금이가 단어 뜻을 읽으면 내가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 있던 유건이 끼어들어서 옆에 앉은 희언이까지 포함해 셋이서 대결 비슷하게 단어를 외웠다. 희언이는 처음에 조금 하다가 실력이 달려서 유건과 나만 하게 됐다.
나는 유건이 엄청 못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꽤 잘 맞추어 놀랐다.
유건은 내가 맞추면 "두리야 찍지마야-" 하고 내가 못 맞추고 자기가 맞추면
"두리야 뭐하냐, 잠잤냐?" 이랬다.
짜증이 났지만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발음 지적을 하니 "아니야, 발음 돼!" 이러면서 티격태격했다. 어쩐지 더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엔 유건이 나더러 못 한다고 뭐라 하길래 나는 말했다.
"너 시험때 보자!"
"시험점수도 내가 너보다 잘 나와. 사회할래?"
유건이 자신있게 답했다. 사회를 잘 하긴 한다.
"안 돼. 나 사회 못해."
"난 과학 못한디."
"그럼 뭘로 해."
"하지 말자. 그냥."
머쓱해진 나와 유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해민이 내게 유건처럼 행동했다면 유건을 좋아할 일도, 해민을 싫어할 일도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