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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아 Apr 09. 2022

건강한 아침 습관

오늘도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에 일찍 눈이 떠졌다. 회사를 다니지 않은 지 햇수로 3년. 이 생활에 일장일단은 있지만, 그중 좋은 점은 아침 알람을 꺼둘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회사에 다닐 때도 스마트 전등을 사서 빛으로 잠을 깨우는 방법을 써볼 수 있었는데, 그때는 하루하루 사는 데 급급해서 내 모습을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하고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귀가 남들보다 예민하고 소음에 쉽게 피로해지는 편이라는 것도 회사를 그만두고 한참 뒤에 알았다. 지하철에서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지하철 소음만으로도 이렇게 시끄러운데 노래가 들리는지, 노래가 들린다면 소리를 얼마나 키운 건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귀가 아파왔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 아픈 건 내 귀다. 이걸 깨닫고는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을 샀다. 간단한 도구 하나로 삶의 질이 이토록 올라갈 수 있다니. 앞으로도 불편한 마음을 무시하고 견디는 일은 줄여가고 싶다.


밥은 안 먹어도 잠은 자야 하는 몸이라,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보통은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잔다. 일어나면 물을 한 컵 크게 마시고 국민체조를 한다. 2019년 타이베이에서 한 달 살기를 했을 때 시작한 것인데, 어느덧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은 숙소 야외 테라스에서 체조를 하려고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여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햇살 아래 누워 있다. 이어서 편백나무의 달고 시원한 향이 폐로 들어온다. 유튜브를 켜고 6분짜리 국민체조 영상을 눌렀다. 그리고 편백나무가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자리에서 체조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2교시 끝나고 운동장에서 다 같이 모여서 했던 새천년 국민체조를 서른이 넘어서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손등치기, 등다리펴기, 금강막기를 하는 동안 뇌가 잠에서 완전히 깼다. 몸을 비틀고 당기는 사이에 기분이 좋아졌다. 옆에 고양이는 내 동작이 커질 때마다 흘끗 쳐다보기는 해도 대체로는 무관심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체조가 다 끝났을 때는 근래 경험한 일 중에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한 아침 습관을 3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특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하는 위기감이 요즘 든다. 이제 나도 삼십 대 중반이고, 특히나 오래 앉아서 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운동량을 체크하는 항목에서 반성을 많이 한다. 숨이 찰 정도로 20분 넘게 운동하는 날이 일주일에 몇 번이냐고? 영혼을 끌어모으듯 운동 비슷한 행위들을 긁어모으지만 턱도 없다. 놀이터에서 조카 따라다닌 거, 무거운 장바구니 들고 집까지 걸어온 거, 약속 시간 아슬아슬해서 뛴 거, 그거 다 합쳐봐야 결과지에는 ‘운동 부족’이라고 뜬다. 얼마 전부터 하루 걸음수가 뜨는 앱을 핸드폰에 켜두기 시작했는데, 운동 자극이 되는 것 같다. 오늘 점심을 먹고는 바닷가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정말 조용한 동네다. 어느 펜션에서 매달아놓은 풍경 소리만 짤랑짤랑 퍼진다. 바다까지 가는 짧은 길에, 동백꽃, 유채꽃, 겹벚꽃, 조팝나무 꽃을 봤다. 유채꽃 냄새는 익숙했다. 진하다 못해 살짝 고릿하기까지 한 유채꽃 향. 어렸을 때 광양에 살면서 유채꽃을 많이 봤다. 광양 시청 앞 넓은 유채꽃밭에서 찍은 사진이 집에 아직 남아 있다. 끝없이 펼쳐진 노란 유채꽃 사이에서 머리를 하나로 묶은 내가 잔머리를 흩날리며 약간 아련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좋게 표현해서 아련한 표정인데, 엄마식 표현으로는 ‘생각이 많고 불만이 많은 표정’이다. 엄마는 내게 “넌 늘 그런 표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은 그 시절에 나는 단거리 달리기를 잘했다. 운동회만 열렸다 하면 일등이었다. 아빠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공부 잘한다는 자랑은 잘 안 했는데, 달리기 잘한다는 자랑은 가끔 하셨다. 커서 생각해보니, 새 다리처럼 마른 둘째 딸이 몸이 아주 부실하지는 않다는 증거인 것 같아서 기쁘셨던 것 같다.


바다 가까이 가니 묵직한 짠 냄새가 훅 난다. 모래사장이 있는 해수욕장은 아니고, 주민들이 나가서 물고기 잡는 바다다. 작은 어선이 몇 대 보인다. 왼쪽 길로 더 들어가 보려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두 마리다. 나는 뒷걸음질 치는데 이상하게 개들과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아, 목줄이 없구나. 눈이 뒤집힌 들개는 아니고, 중간 크기의 애완견이었다. 한때 달리기 왕이었던 나라도 개보다 빨리 뛸 순 없다. 게다가 등을 보이고 뛰면 강아지들이 더 흥분해서 달려들지도 몰랐다. 그래서 몸을 반쯤 튼 상태로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동작을 취했으나, 사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패닉 상태였다. 강아지들은 더 심하게 짖어댔다. 미쳐가고 있었다. “너네 뭐 하는 거야!” 크고 단호한 목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강아지들은 깨갱 하고 얌전해졌다. 근처 펜션 사장님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겨드랑이와 종아리에서 땀이 배어났다. 심장이 뛰었다. 이걸로 오늘 운동은 끝. 숙소로 올라가는 길에 펜션 사장님한테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장님이 말했다. “쟤들 뭐야! 사람 물겠어, 아주! 어휴, 저희 집 개 아니에요.”


평온했던 하루가 목줄 없는 개들의 등장으로 공포물로 바뀌었다. 앞으로도 저 바닷가 쪽으로는 내려가지 못할 듯하다. 작년, 시골살이 로망이 생겨서 촌집을 알아보다가 읽은,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상상은 리틀 포레스트, 현실은 곡성.” 조용한 시골 동네라서 좋을 줄만 알았는데, 역시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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