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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아 Apr 08. 2022

햇살 온천을 즐기다

방이 환해서 절로 눈이 떠졌다. 직감적으로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시 눈을 감고 자다가 핸드폰을 보니 7시 40분. 여전히 너무 이르다. 숙소가 동향인가 보다. 오전 내내 방으로 해가 가득 들어왔다. 주섬주섬 트렁크를 열어 집에서 가져온 썬캐처를 창문에 매달았다. 썬캐처에 반사된 빛이 흰색 침대보 위로 예쁘게 떨어진다. 우리 집 내 방은 북향이라 해가 안 들어와서 모빌이나 다름없었던 썬캐처가 이렇게 제자리를 찾았다. 살짝 덥다고 느껴질 정도로 따뜻한 날씨에 기분이 좋아져서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려서 밖으로 나갔다. 여기 펜션에는 다른 투숙객들과 공용으로 쓰는 테라스에 테이블이 세 개 있다. 그늘진 자리도 있는데 굳이 해가 가장 크게 떨어지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등이 뜨끈뜨끈하다. 나라는 존재는 너무 작다는 듯 태양은 금방 내 몸속까지 따뜻하게 데워버렸다. 온천물에 들어온 기분. 안심이 된다. 이번 겨울은 너무 추웠다. 몸을 웅숭그리다 못해 어깨가 말릴 지경이었다. 하루건너 하루, 내가 뭘 하면서 살고 있는 건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불안했다. 계획했던 대만 어학연수가 코로나 감염으로 엎어졌을 때는, 내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사실이 부담되기까지 했다. 나는 어학연수를 한 학기로 미룰 수도 있었고, 취업을 알아볼 수도 있었고, 유럽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뭐든 할 수도 있었다. 지난 몇 년 간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프리랜서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니 자유라는 개념 안에서 정확히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 다시 찾아가는 기분이 든다. 큰길만 잃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해본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이미 알고 있다고 내게 믿음을 보내본다. 그래도 불안하면, 나는 어차피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위안이 된다. 먼 미래에 별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늘이 더 소중해진다. 애가 타던 마음도 잠잠해진다.


커피를 호로록 마시다가 문득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몸을 살짝 틀어 태양을 비스듬히 피하긴 했지만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기미는 이미 조금 있다(매일같이 자외선 주의보가 뜨는 대만에서 살 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모공도 전보다 늘어졌다. 피부과에 갈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예순이 되면 지금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르겠으나, 예순에도 나는 ‘굳이’ 하면서 누워 있을 것 같다. 해리 포터는 이마에 커다란 번개 상처가 있는데 레이저로 지우지 않고 살고 있지 않은가. 오늘은 일을 해야 하는데, 밖에 더 있고 싶어서 노트북을 들고 다시 나왔다. 그런데 노트북 화면이 안 보인다. 노트북 화면은 야외에서 잘 안 보이는구나. 인터넷 사진에서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다 야외에서 노트북 하고 있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알고 보니, 노트북 화면 밝기를 너무 낮게 설정해놓은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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