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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아 Apr 10. 2022

시골에서 받는 흔한 질문

작년, 재작년 시골살이에 관심이 생겨서 촌집을 좀 알아봤다. 그런데 촌집, 빈집이라고 해도 사람이 살 만한 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비쌌다. 일본이나 이탈리아에서는 시골에 빈집이 넘쳐나서 무료로 나눠준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은데,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내 희망 사항에 가까운 일 같다. 집값도 집값인데,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서 연고 없는 시골에 들어가 산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도 이 지점에 대해 한 책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시골에 여자 혼자 사는 게 뭔가 이상한 일이죠. 그래서 그 부분을 처음부터 많이 고민했어요. 여자 관객들이 혜원의 상황에 대해서 보는 내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안전장치로 일단 개를 키워야 되겠다 싶어서 진돗개 오구가 등장했고, 친구들과 고모가 아주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일종의 보완 장치를 했어요.” _《괜찮지 않은 세상, 괜찮게 살고 있습니다》 본문 중


촌집을 살 돈이 있느냐와 안전 문제와는 별개로 우리 엄마가 걱정하는 것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바닥을 기는 나의 사회성. 대학 때는 MBTI 검사에서 첫 알파벳이 E로 시작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점점 더 외향성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이게 내 본 모습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던 엄마의 말에 따르면 시골살이는 협동이 전부란다. 내 일, 네 일 구분하지 않고 도와야 하고 그래야 힘들 때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단다. 이장님이 방송에서 ‘오늘 누구 네 집 무슨 일 있으니 모입시다’라고 했는데 안 나타나면 바로 왕따 당하고, 그 길로 생활이 아주 곤란해진단다. 그럼 외할머니 댁에서 좀 지내보면 어떨까, 하고 물으니 엄마가 깔깔 웃는다.


“시골에 가면 나무 아래 평상 같은 데에 꼭 할머니들이 모여 있거든? 너 지나가면 그럴 거다. 오메, 뉘 집 손녀당가. 이리 좀 와서 앉아봐. 몇 살이당가. 어째 아직 시집을 안 갔당가. 오메, 오메, 이게 다 뭔 일이당가. 씨방 뭐 사 가지고 오는 길이당가. 비닐봉지 좀 열어봐.”


갑자기 시작된 엄마의 모노드라마가 끝나자 상념에 잠긴 나는 한마디 툭 던졌다.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겠네.”


그랬더니 엄마가 또 자지러지게 웃는다. 아까랑 다르게 웃음소리가 사투리 톤으로 바뀌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궁금한 것이 많은 할머니들 사이에서 혼이 나가버린 내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모양이다. 대학 입학 전까지 시골에 살았던 아는 동생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언니, 시골에서는 옷도 마음대로 못 입어요. 제가 민소매티 입고 나가잖아요? 엄마부터 현관문 앞에서 말려요. 야, 여기 외국 아니야! 하고. 빨간 옷 입고 나가잖아요? 할머니들이 엄마랑 싸웠냐고 해요. 언니, 진짜 감당할 수 있겠어요?”


사실 지난달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라는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넣었다가, 다음날 다시 취소했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5개월 동안 주민들과 잘 지내볼 자신이 없었다. 겨우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다시 가면을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남해에 온 것 같다. 시골이긴 하지만, 여행으로 온 거니까 나는 나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서 시골의 정취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직까지는 내가 바라던 대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오늘 오전에 브런치를 먹으러 나서는데 펜션 사장님이 어디에 가냐고 물으셨다. 카페 마샹스에 간다고 하니까, 거기까지 태워주시겠단다.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고 했는데, 돌아올 때 천천히 걸어오라고 하신다. 그래서 나도 더는 사양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


“결혼은 했어요?”

사장님이 물으셨다.

“아니요.”

“아이고, 몇 살인데요?”

“서른세 살이요?” (갑자기 내 나이가 몇인지 확신이 안 서서 끝을 살짝 올려 말했다. 알고 보니 나는 서른네 살이다. 어쩐지 대만에 있었던 서른한두 살에 나이가 멈춰버린 것 같다.)

“결혼하기 좋은 나이구만…… 남자친구는요?”

“없어요.”

“아이고.”

“한번 잘 찾아볼게요.”


밝혀두자면, 사장님과의 대화는 불편하지 않았다. 엄마의 격정적인 모노드라마에 비하면 사장님의 말투는 훨씬 부드러웠고, 일단 나를 차로 데려다주는 친절을 베풀어주셨으니까. 이어서 사장님은 자기 딸 이야기도 조금 하셨는데, 그 덕에 사장님과 더 가까워진 기분도 들었다. 어쩌면 내가 엄마의 그 괴상한 모노드라마 덕분에 이런 질문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었는지도. 세게 백신을 놔준 엄마,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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