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

by 박한얼 Haneol Park


내가 열다섯 살인가

국민학교 졸업하고 서울을 올라갔는데

너네 고모부가 그때 택시를 했어

그때는 시발택시라고 있었는데 62년도 얘기야

택시 모양이 지금하고는 조금 달랐어

그냥 44년식 엔진을 개조해서 만든 거였어

그런데 그때는 그게 최고였어

니들 태어나기도 전 얘기여

그때 한일시멘트가 생겼는데

거기에 원래 있던 논이 내 이름으로 돼있었어

그때 그 땅값으로 10만 원을 받았어

그걸 신문지로 싸가지고 서울로 올라간 거야

그 고모부한테 내가 택시를 사줬거든

이걸로 같이 택시 사업합시다!

이러고 같이 시작을 했지

내~가 열다섯 살 때부터 그런 사람이었어 내가~

ㅋㅋㅋㅋㅋ

그렇게 하려다 보니까

나는 면허도 없지 운전도 못하지

그래서 고모부한테 사업을 맡겨놓고

자동차학교를 가 가지고 면허증 따려고 공부를 했지

그게 62년도에 가장 추운 겨울이었어

바다가 얼 정도였어

그거 한다고 산 꼭대기에서 다른 애들 셋이서

국수만 삶아먹으면서 숙소 생활을 해서 면허증을 땄어

면허증 따기가 그렇게 힘들었어 옛날에는

속성과는 2개월인데

나는 경험이 없으니까 4개월 돈을 내서

학교를 그렇게 다녔지

63년에 그렇게 면허증을 딴 거야

근데 옛날에 쓰던 고물 택시를 인수한 거야. 그거에 10만 원이 들었어

하루 일 나갔다 오면 하루 종일 뜯어고쳐야 되고

아주 고모부랑 고생 많이 했다

기본요금 2~300원할 때 그거 하루 종일 택시 굴려서 3천 원이야

근데 그 지금으로 치면 30만 원일 걸?

대신에 택시를 구할 수가 없었어 너무 비싸고 귀해서

게다가 택시라고 해서 자유롭게 끌고 다닐 수도 없었어.

서울역 청량리역 옆에 가서 손님을 기다리면

깡패들이 많아서 상납을 해야 했어

그 깡패들 때문에 차를 못 댔거든

자유당 시대 때 얘기야. 무법천지니까

그때는 주먹이 왕이었잖아.

진짜로 주먹질을 잘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김두환 밑에 깡패들.

그런 패거리가 왕이었다는 거야.

그때는 아마 건달이라고 했나? 이름을 달리해서 불렀어.

동대문파, 청량리파, 명동파 막 이래 가지고

지역적으로 다 있었어

시민들은 그냥 노예처럼 일하고

깡패들은 다니면서 매번 상납을 받아가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

사람들이 그렇게 미개했었어

미개했다고 봐야지.

깡패 오야봉이라고 하면은 경찰들도 아무것도 못하는 거지.

경찰 위에 깡패가 있으니 치안이 어땠겠어?

성폭행도 엄청 많이 했지

말할 필요도 없어

여자는 하나의 노리갯감으로 생각했을 때였으니까

뭐 깡패들이 갖고 싶음 갖고 버리고 싶었음 버렸지

그래서 그 시절에는 여자들 얘기가 안 나와 아예

그걸 오랜 기간 하다 보니까

점점 소리를 내기 시작해서

여성 상위시대라는 얘기가 나왔어

그것도 아마 60년대였을 거야

그래서 그때 나라에서 하나하나 개척을 해가지고 여자들의 지위를 높여줬었어


다른 노인네들은 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

미친 소리 한다고 할지도 모르지

나는 개방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애

다른 사람들은 봉건적인 생각을 더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

내 또래 사람들이랑 술을 한 잔 해보면

나는 확실히 개방적이야

지금 달나라랑 화성에 가려고 하는 세상인데

옛날 고리짝 생각을 하고 있냐고 그렇게 얘기하거든 나는

근데 그런 친구들조차도 다 죽어버려 가지고

대화할 사람이 없어

아주 답답하지 뭐


내가 한참 일 할 때가 7~80년도였는데

그때 내가 개방적인 이야기를 해서 좀 따돌림을 당한 적도 있었고

그래도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봐도

내 말이 맞았던 거 같애

그런데 그 봉건적인 이야기 했던 사람들은 다 죽어버렸고

내가 아무리 이렇다 저렇다 얘기를 해도

증인이 없으니까 내가 개방적이라는 걸 인정받을 수도 없지


너네 할머니가 부잣집에 식모로 있었는데

시골에서 보니까 참해 보이더라고

부끄러움을 굉장히 많이 탔어

도랑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길래

어디서 만나자고, 나오라고

연애편지를 써가지고 준 거야

그렇게 부끄러움을 타면서도 나왔더라고?

초가을 달밤에 아마 밤새도록 얘기를 했어

할머니가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 거야

내가 아무리 말을 시켜도

밤새 내 얘기를 듣기만 하고 있더라고

세상에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어

그날 새벽에 간신히 보내 가지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너네 큰엄마를 시켜서 또 연애편지를 전달하고

그러고 지냈는데

내가 영장이 나온 거야

군대를 갔지

그동안에 소식이 끊어졌어

그 여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3년 6개월 동안 서로 펜팔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걸 안 하고 그냥 나온 거야 내가

할머니가 그동안에 애인으로 사귀고 그랬던 것 같애

나를 통해서 좀 연애에 눈이 뜨였나 봐

내가 전역하고 할머니를 찾아갔지

길도 없고 버스도 하루에 한 번 오는 데를 내가 찾아가 보니까

처제랑 외할머니랑 셋이서 초라하게 살고 있더라고

여자들만 사는 곳이었는데 참 순진해 보이고 좋았어

외지의 남자가 집으로 찾아와서 소문 안 좋게 난다고

거기서 사람들이 나를 불러가지고

새벽 내내 이것저것 물어보니까 나는 얼버무리고 제대로 말도 못 했지

근데 장모님이 그때 나한테 미래의 사윗감이라고 어디서 소대가리를 사 와서 삶아주는 거지 이제

가마솥에서 푹 하니 삶아서 주는데

그냥 기름 덩어리인 거지 뭐

이걸 소화를 시킬 수 있겠냐?

설사병이 들어가지고 죽다 살았어 거기서

지금 생각하니까 웃기네ㅋㅋㅋ

그 처갓집에서 참 사위 대접을 잘 받았지

그렇게 할머니 데리고 내가 서울로 올라왔지

장모님한테 내가 결혼시켜서 살 테니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쇼. 이러고 데려왔지

젊어서는 겁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뭐 잘 한 건지 못 한 건지 알 수도 없어

내가 그렇게 대담하게 나오는 바람에

나랑 결혼해버린 거지

내가 그렇게 안 했으면 나랑 결혼 안 했지


너네 할머니가 다른 동네로 가서 미용을 배운다고 그랬어

옛날에는 끼가 있는 여자들이 그렇게 미용 배우고 화장품 장사하고 모양내고 이러고 다녔거든

할머니가 이제 끼가 많은 여자들의 무리에 좀 들어간 거야

내가 너네 할머니 어머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좀 장모 될 분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71년도인가 72년도에 대 홍수가 났었어

너네 할머니는 나랑 서울에서 그렇게 같이 살게 됐었는데

어머니랑 처제는 그냥 집이랑 같이 쓸려가서 아무것도 안 남아있는 거야

그게 다 간포 앞바다로 쓸려간 거야

기가 차잖아

뭐 시체가 있어 뭐가 있어

그 넓은 바닷가를 열흘 이상을 할머니랑 같이 헤맸지

결국엔 못 찾았지

그때 너네 할머니를 더 불쌍하게 생각하게 됐어

근데 할머니는 자기 친정이 없다고 무시하냐고 피해의식으로 사람을 의심하니까

그게 한 두 번 그랬음 모르겠는데 너무 심하니까 나중엔 이제 내가 욕이 나오고 그렇게 되더라고

참 부부싸움을 많이 했지


근데 그다음에 할머니 남동생이 하나가 있었어

지 엄마하고 여동생이 그렇게 되니까 애가 타락을 한 거야

나라에서 수해복구를 해줬는데도

술만 마시고 힘들어하고 방탕하게 살면서

배밭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그냥 죽었어

화장시켜서 버리고 말았지

간포 앞바다에 버리고 말았지

뭐 이미 죽고 나서 발견했는데 어쩔 거야


너네 할머니는 항상 자길 업신여긴다고

그렇게 날 원망을 하고 그랬어

왜 그렇게 뜻이 안 맞았던지

지금 보면 내가 부족했나 싶기도 하고

할머니가 너무 무식해

이해가 안 가게 너무 무식했어

말로는 표현을 못 하겠어


그래도 또 먼저 가니까

참 불쌍하고 그렇지 뭐

무식해도 잘할 땐 잘했는데

좋게 해 줬던 때도 생각이 나고

이제 후회하면 뭐하냐

다 그 시절이고 뭐


지금 이제 머리가 둔해졌는데도

이렇게 옛날 생각이 수도 없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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