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박한얼 Haneol Park Jan 4. 2022
그러고서 이제 겨울난리가 또 내려온다는겨
이번엔 뭐 다 싹 쓸어버린다고 소문이 나고 그러니까 피난을 가자고 얘기가 나왔지
너네 증조할아버지가 그때 동네에서 이장인가를 했어
근데 의용군으로 징집이 돼버려서 전쟁터로 불려 간 거야
그래서 우리끼리 피난을 가야 되잖아
처음에는 열차 타고 가면 된다 그래 가지고
그쪽 사는 사람들이 도담역 화물칸에 짐을 다 넣었어
근데 인민군들이 먼저 넘어가 있어서
열차가 못 지나간다는 거야
사람들이 거기에 짐을 버려두고 걸어갈 수밖에 없게 된 거야
나는 깔고 자는 초석자리(돗자리) 하나만 메고서 갔어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는데
그 초석이 이렇게 가로로 길다 보니까 왼쪽에서 치고 오른쪽에서 치고 그래서 뒤뚱뒤뚱거리면서 아주 갈 수가 없었어ㅋㅋㅋㅋㅋ
근데 우리가 피난 간 곳으로 증조할아버지가 탈영해서 쫓아온 거야
어차피 죽을 거면은 식구들이랑 같이 도망가다 죽겠다고 찾아온 거야
그래서 다 같이 겨울피난을 갔어
어디 강을 건너가는데 눈 위에 엎어져서 죽어있는 사람도 있고
소는 얼음판에서 다리를 못 가누고 너부러져서 산 채로 누워있는 거야
근데 사람들이 먹고살려면 어쩔 수가 없어
그걸 산 채로 그냥 칼로 뜯어먹은 거야
어린 마음에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 그때 나는
그런 걸 보면서 피난을 했어 나는
그렇게 가다가 증조할머니를 그냥 잃어버린 거야
사람들끼리 막 밀려가는데 찾을래야 찾을 수가 있어?
증조할머니는 갓난아기를 업고 가족 잃어버려서 얼마나 애가 탔겠어
근데 외할아버지를 만나서 같이 있더라고
그러다가 우리랑도 사람들 모인 곳에서 다시 만나고
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디 앉을 수도 서있을 수도 없는데
가마솥에다가 아까 그 소를 막 구워서 먹었어
근데 증조할머니는 자식들한테 다 퍼주고 자기는 그 소를 삶은 국물만 퍼먹은 거야
그 국물만 먹었는데도 젖이 돌더라면서
소고기가 그렇게 몸에 좋았다고 진술을 하더라고 너네 증조할머니가.
사는 얘기 하면 뭐하냐
사는 얘기 하면 눈물밖에 안 나
그래도 그때 그렇게 거지같이 살았으니까
지금 이렇게 사는 거야
한 끼 좀 안 먹어도 감사한 거야
이건 천국이야
이런 천당이 어딨어.
(눈앞에 놓인 꼬막을 가리키며)
지옥과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마음에 있는 거야...
마음에 있는 거야 내 마음에.
무슨 지옥과 천국을 믿어
사람 개개인의 지옥과 천국이 다 있는 거라고 보면 돼
그걸 실감해보지 않으면 몰라.
6.25 때 남자들이 너무 많이 죽었잖아
예를 들어서 10명이 군대를 갔다?
그러면 그냥 다 총알받이여
한 두 명 살아오지 다 죽어.
그래서 남자 하나에 여자가 한 트럭씩 된다고 그랬었어.
여자가 많고 남자가 귀하다는 뜻이야
남자가 너무 많이 죽었단 말이야
그래서 남자들이 아무 데나 대고 막 그런 짓거리를 해버렸는데 그게 보편적이 돼버렸어
길 다니다 보면 막 그냥 아무데서나 하고 있고
아주 아비규환이야
웃기지도 않어
심지어 여자가 낮에 부엌에서 밥하고 있으면
그냥 웬 남자가 지나가다 집으로 들어와서
여자한테 해버리고 가
그땐 그랬는데도 아무 말도 못 했어
그래서 그땐 여자들이 좋은 치마저고리 해 입지도 못했어
그냥 담요 같은 걸로 대충 거지같이 감싸고 다녔지.
우리 가족은 여자들한테 뭐 탐욕이 없었어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자라는데
먹고사는 것도 죽겠는데 뭘 육체를 탐해.
그래서 다들 아들을 낳으려고 그랬어
아들 낳게 해달라고 다들 집에다가 금줄을 달고 그랬었어
여자를 낳으면 큰 경사를 못 쳐
남아선호사상이 그때 심해진 거야
그런 걸 보면서 자라서 다들
사람이 아주 악랄해져
죽기 살기로 사는 거야 그냥
노인네들이 그런 걸 겪은 거 치고는
다들 진짜 착한 거야.
전쟁은 무조건 없어야 돼
얼마나 비참한 건지 몰라
지구 사람들이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 다 같이 망하는 거야
근데 또 없어서도 안 되는 게 전쟁이야
인간이 너무 많아
좀 소멸되어야 평균을 이루고 살아
그니까 전쟁이 일어나는 국가가 불쌍한 거야
대국은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는 거야 또
자기들 무기를 팔아먹어야 되니까
그걸 알아야지
대국은 전쟁을 안 해
약소국들한테 전쟁을 부추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