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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May 08. 2020

내 몸은 내가 건사한다는 자부심


25살을 맞은 친구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결심한 계기는 별게 아니었다. 무기력하고 우울했을 때,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지인이 “안 해본 일을 하나 해보는 게 어때?"라고 조언했고, '안 해본 일? 아르바이트를 한 번 해볼까?' 하다가 덜컥 홀서빙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고 한다.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이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자신만 유난하게 힘든 줄 알았다는 말도. 아르바이트 덕에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고, 시야가 넓어졌다. 그는 직접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자신을 위해 돈을 번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알았다. 나를 내가 온전히 책임지고 감당한다는 기분, 1인분의 몫을 한다는 느낌. 그게 얼마나 벅차고 뿌듯한 감정인지 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덕에 자신의 세상이 넓어졌다며 웃는 그를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경험을 하더라도 둘, 아니 그 이상의 깨달음을 얻는 친구가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아르바이트가 어떤 경험이었더라. 건져 올린 것은 대부분 지치고 회의감이 드는 감정들이었다.


처음엔 새로운 일을 배우고 돈을 버는 게 재밌었던 것도 같다. 아르바이트에 점점 지쳐갔던 건 진상 손님도 함께 일하는 사람 탓도 아닌, 아르바이트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르바이트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 더 나은 상태를 위한 일이 아니라, 한 달간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으로 전락했다. 처음 일을 하던 순간의 유능감도, 일을 구할 수 있다는 감사함도 점차 퇴색되었다.


세상에는 무례한 인간이 많고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 앞에 선 나는 너무도 작고 만만한 존재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부족한 벌이도 늘 마뜩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생활비로 쓰다 보면 금세 동이 났다. 따로 저축하여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게 쉽지 않았다. 벌어서 생활비로 쓰고 나면, 또다시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했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한 번은 학교 앞 포차에서 일한 적이 있다. 매장이 바쁜 편인데,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과장님 한 분뿐이었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주방은 늘 정신이 없었다. 하루는 안주 주문이 물 밀듯 들이닥쳤다. 과장님은 손을 바삐 놀리다가 그만 찌개 육수를 자기 손에 부어버렸다. 펄펄 끓는 육수를 부었으니 손이 멀쩡할리 없었다. 겉보기에도 손등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과장님에게 당장 병원에 가시라고 말했더니, 그는 “가게를 두고 어디를 가냐.”며 약만 대충 바른 채 일을 했다. 


또 한 번은, 정육점에서 한 달 동안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양념에 절인 고기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시식용 고기는 타지 않게 구워야 했으며, 입으로는 안내 멘트를 끊임없이 날려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집에 가면 녹초가 됐다. 하지만 정육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나보다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했다. 고기의 그람 수를 재고, 해체하고, 포장하여 진열하여 판매하는 일을 쉬지도 못하고 반복했다. 


어린 마음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삶을 지켜내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거구나. 힘들어도 참고, 가정과 자기 삶을 건사하기 위해 책임을 져야 하는 거구나.’ 살기 위해 저렇게까지 애써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선뜩하게 무서웠다. 그런 게 어른이라면 어른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암만 많이 해보았어도, 이미 성년이 되었어도 나는 그저 ‘어른애’였다.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하고, 책임지는 걸 두려워하는 어른애. 내가 내 삶을 결정하는 것보다는 남이 결정해주는 편이 편했다. 누가 대신 결정해주면 주어진 상황 안에서 열심히 할 자신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아르바이트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된 건 돈을 버는 목표가 생긴 후였다. 정확히는 내 공간이 생긴 후부터 태도가 달라졌다. 원룸에서의 첫 자취는 기숙사나 고시텔과 비교할 수 없이 즐거웠는데, 즐거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원래 아르바이트가 ‘한 달 먹고살기 위해서 별수 없이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내 공간을 영위하는 수단’으로 변화했다.


독립한 후에는, 삶을 스스로 건사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떨 때 즐거워하는지. 인테리어 취향을 알게 되었고, 좋아하는 그릇의 디자인을 알게 되었다. 직접 번 돈이니 쓰는 것도 자유로웠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무언가를 구매할 때 타인의 안목에 의존하지 않았고, 메뉴를 정할 때도 내가 먹고 싶은 걸 우선시했다. 그 과정에서 오는 뿌듯함과 즐거움은 몸으로 부딪혀보지 않았으면 평생 모를 감각이다. 


뜨거운 국물에 화상을 입고도 계속 일하는 주방 과장님, 나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던 마트 직원분들. 이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힘들어도 맡은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자신을, 혹은 가족을 책임진다는 건 그들에게 큰 자부심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그늘에서 벗어나 내 팔다리를 움직여 돈을 버는 것은 단순한 경제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건 내가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적이고 온전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힘들어도 내 삶, 불만스러워도 내 선택이다. 나라는 1인분만큼은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스스로를 책임질 줄 아는 인간이 된다는 건 그보다 값진 일이란 걸 이제는 안다. 스스로를 위해 돈을 벌고, 삶을 연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은 멋지고 대단하다. 나를 책임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 그게 내 삶의 긍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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