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읽는 걸 좋아한다. 특히나 여성 작가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데, 같은 성별이라는 것만으로도 공유하는 보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삶의 군상을 살필 수 있는 것도 좋다. 나와 비슷한 삶이든 완전히 다른 삶이든 각자 읽는 재미가 있다. 비슷한 정도의 차이일 뿐, 나와 같은 삶은 하나도 없다. 남의 인생사를 보고 있자면 '저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나에게 가장 큰 영감과 용기와 안도를 준 에세이를 꼽자면, 단연 <혼자서 완전하게>다. 이숙명 작가님의 책이고,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혼자서도 잘 사는 이야기다. 지금이야 1인 라이프에 대한 콘텐츠가 많지만, 책이 출간된 17년도만 해도 ‘혼자’라는 단어는 외로움과 결핍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때 작가님이 ‘혼자서도 완전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작가님은 책에서 스스로를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단독자’라고 칭한다. 외로움을 대가로 지불한 대신, 최대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원래 세상은 ‘해야 하는 일’로만 가득하다고 생각해왔던지라, ‘자유로운 단독자’의 개념이 파격적이게 느껴졌다. 나 역시 외로움을 지불하고, 돈을 남들보다 덜 벌더라도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늦게까지 술을 마실 자유, 부모님 허락 없이 외박할 자유 같은 거 말고. 온전히 내 취향으로 꾸민 공간을 가지고, 그 안에서 아무 간섭 없이 생활할 권리를 누리는 삶이다. 누구의 도움을 얻지 않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입고 싶은 걸 사고, 내 마음대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의 최대 목표는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 즉 ‘타인에게서 자유로운 단독자’가 되었다. 혼자서 고립된 채 살아가겠다는 뜻은 아니다. 타인과 함께할 때는 물론이고 혼자 있어도 즐거운 사람, 나를 설명하는 데 있어 타인의 이름을 빌려오지 않아도 되는, 그런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게 목표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의 가족들도 철저하게 자기 행복만을 위해 살아주기를, 나를 위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기를, 결과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채무감을 지우지 않아 주기를 바란다.' 딱 내 마음이다. 야박하다는 비난을 살까 입 밖에 내본 적은 없는 마음이기도 하다.
내 행복을 추구하는 건 이기적인 행동인 것만 같아 죄책감이 들 때가 많았다. 다른 가족 구성원이 힘들 때 나만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로 스스로를 진창에 밀어 넣고, 불행해질수록 안도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좀 이기적이면 뭐 어떤가. 내 즐거움과 행복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연한 일이다. 나부터 행복해야 남을 도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단독자가 되겠다는 건, 어느 상황에서도 ‘나’를 돌보는 걸 최우선시하겠다는 다짐이다. 죄책감 때문에 내 행복을 유예하지 않을 것이며, 타인의 행복을 보살피느라 나를 뒷전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다짐.
상담학과 재학 시절, 수업 중에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다. “흔히, 연인끼리 반쪽과 반쪽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말이 있지요? 그건 잘못된 말이에요. 온전한 하나랑 또 다른 하나가 만나는 게 연애고, 결혼입니다. 남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지 말고 독립적인 인격을 갖춰야 합니다.”
교수님은 연인 관계를 떠나, 모든 관계에서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사람이 만나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관계를 맺게 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계에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경우, 언제 그가 떠날지 몰라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반쪽'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하나를 둘로 쪼갠 것 가운데 하나.'다. 즉, 다른 반쪽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불완전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어떻게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완전해진다고 해도 다른 반쪽이 사라지면 또다시 반이 되는 꼴이다.
그러니 나도, 친구를 만나든, 연인을 만나든 온전한 하나의 단독자로서 관계 맺기로 다짐해본다. 부족한 건 스스로 채우자. 언제나 내 행복을 최우선시하며, 스스로의 안녕을 살피자.
이숙명 작가님과 혼자 사는 삶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엄마 말고는 별다른 롤모델이 없던 나는, 이숙명 작가님을 롤모델로 삼았다. 작가님은 책을 통해 나를 위한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몫이니 네가 책임지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덕분에 나는 이대로도 괜찮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