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증이 생겼다. 아니, 생겼다기보다는 원래 있었던 걸 최근에 인지하기 시작했다. 비문증은 유리체 혼탁으로 인해 눈 앞에 벌레처럼 생긴 그림자가 떠다니는 증상을 말한다. 왼쪽 눈에 꼬리가 긴 것 두 개, 개구리알 여러 개가 보이고, 오른쪽 눈 정중앙에는 커다란 게 하나 보인다.
이게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게 안과에 가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수술을 할 수 있긴 하지만, 벼룩을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 했다. 눈에 좋다는 영양제나 과일도 아무 효과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냥 무시하는 것 외에 뚜렷한 수가 없단다.
보이는 걸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햇볕이 강한 곳에 가면 더 잘 보이고, 눈동자를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따라다니는데 그걸 무시하라고? 무시는커녕, 나도 모르게 비문증만 백날천날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젠 눈 앞에 떠다니는 녀석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생하게 알게 됐다. 눈을 뜨고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사위가 어둑해지고, 눈 앞의 녀석들이 보이지 않아야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자리에 누웠는데 오늘 하루는 비문증이 크게 의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은 흐린 날이라 해가 강하지 않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느라 비문증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이게 무시를 하고자 하면 정말 무시가 되는 거였다니.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비문증이 보여도 눈 앞의 풍경에만 집중하며 무시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신경 쓰이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 맞이한 어느 날 밤이었다. 혼자 보내는 밤이 무서워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집이 거대하게 느껴졌고,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 작은 소음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 안은 지나치게 적막했고, 공기가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한 번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막연한 공포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혼자인 채로는 영원히 괜찮을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밤이 아니어도 매한가지였다. 시간이 너무 안 가서 미칠 것 같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지만 다시 혼자가 되면 막막함은 그대로였다. 진정으로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꿈을 좇아 나아가고 싶은데 꿈이 없었다. 남들은 혼자서도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늘 조급하고 불안했다. 차라리 누군가 내 시간을 대신 써주었으면 했다.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애인의 외근 업무를 따라간 적도 있었다. 혼자 남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가장 값싼 교보재이자 친절한 선생님이니까.
감정에 대한 책을 읽다가, 내가 '분노'의 감정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화가 난 상태였다.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속에서는 늘 서운함과 분노가 엉망으로 뒤섞여있었다. 놀라운 건 스스로가 화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 분노는 주로 속에서 폭발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향하지 않았기에 그걸 분노가 아닌 서운함과 외로움으로 오역했다.
한마디로 나는 꿈과 목표 없이 극심하게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타인의 관심과 애정으로 채우고 싶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아 화가 난 상태였다. 그때 깨달았다. 계속 타인의 관심만 기다리고 있다가는 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내가 그들의 마음을 조종해서 억지로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게 할 순 없지 않은가.
인간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 외로움은 모든 인간이 느끼는 필연적인 감정으로, 반려자가 있거나 가족이 있어도 외롭고 두려울 수 있다. ‘절대 외로워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더욱 깊은 외로움을 낳는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외로운 건 어쩔 수 없으니 다른 감정에 집중하자. 외로움은 비문증처럼 수술도 안 되고, 영양제를 먹는다고 호전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최대한 오래 까먹은 채로 지내자는 거다.
지금은 내 외로움이 어떤 모양인지 뚫어지게 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다. 그런 것보다는 하루에 하나씩 즐거운 일을 하려고 한다. 별거 아닌 행복이라도 자주 느낄 수 있는데 온 최선을 다한다. 타인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일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외롭다는 사실이 잊히는 순간이 온다. 아무래도 나는 점점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괜찮은 사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