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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May 18. 2024

제주 부모들은 어디 가나

흔한 주말에, 여느 애 있는 집의, 흔한 고민

여름과 가을이 혼재하는 9월의 일요일 아침.

어제의 미지근한 아침 공기와 달리, 오늘은 돌변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 섞인 쉼 없는 풀벌레 소리는 중간중간 끼어드는 꾀꼬리, 까마귀, 까치 등등의 새들로 꾸밈음을 더한다.

옅은 바람에 조금씩 엉덩이를 흔드는 풀잎, 나뭇잎 그리고

저 멀리 하늘에 가득 낀 구름과 뒤엉켜 경계가 모호해진 해안선까지.


창가에 걸터앉아 온몸에 힘을 빼고 나를 둘러싼 이 순간을 천천히 들이마신다.


전날 협재에서의 해수욕으로 기진맥진해진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쉼을 취하고 있다.


창문을 열어 조금의 바람만을 허용한 채 나무의 반복적인 듯 불규칙적인 흔들림을 보며

'나무멍'을 즐기는 나.

2층 뷰명당 테라스에서 독서를 즐기는 남편.

블록 놀이에 몰두하는 첫째와

위아래 층을 돌아다니며 노래에 맞춰 춤을 는 둘째까지.


그렇게 오전 내내 '오늘 뭐 할지'의 결정을 미루면서 집콕을 즐기고 있다.

좌)춤 추는 찬과 블럭 삼매경 율/ 우) 작품명: 꽃과 물조리개




아이가 있는 가정의 부모들이라면 모두 주말마다 같은 숙제를 가진다.


 '오늘은 어디로 데려가야 하지?'


수도 없이 해왔던 고민인데, 평소와 다른 것이라면 선택의 범위가 '제주'라는 것♡.


오전 내내 실컷 집콕을 즐기고 난 가족들은 전날 해수욕에 소진한 에너지가 충전되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슬슬 밖으로 나가고 싶은지 서로 싸움을 걸며 외부활동에 시동을 건다.

어른들이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급한 대로(;;) 숙소 앞마당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곤충채집을 시킨다.

아이들의 밝은 본성은 뛰어놀아야 맞다.

실내에 가두거나, 미디어로 묶어두면 밝은 에너지를 아름답게 사용하지 못하고 썩히게 된다.



집에서 점심까지 간단히 해결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나간 곳은 조천읍인 숙소에서 가까운 사려니숲 인근의 목장카페였다.


아이들과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만만한 것 중 하나가 먹이 주기 체험이다.

말, 물고기, 코끼리, 토끼, 펭귄, 미어캣, 애벌레... 아마 동물이란 동물은 종류별로 먹이를 줘본 것 같다.

개인적으론 갇혀있는 동물이 가엽기도 하여 동물원이나 먹이 주기 체험 같은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가 되면 개인의 취향은 잠시 접어둬야 하는 법.

나의 취향과는 무관하게 순수한 아이들의 영혼은 자연과 가까워 동물을 대부분 좋아한다.

비록 접하는 방식이 동물원, 목장과 같이 너무 인간중심적인 방법이긴 하나

이미 인간화된 현대 문명에서 자연스럽게 동물을 접하기란 어려워졌다.


그래도 오늘 가는 곳은 사려니숲 인근자락으로 굉장히 조경이 아름답다고 하여 내가 좋아하는 나무멍을 기대하며 가 본다.


역시.. 제주의 자연은 틀린 적이 없다. 카페에 들어서기 부터 이미 넓은 잔디와 울창하고 키 큰 나무들에서 무의식적으로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있다.

카페 내부도 숲의 아름다움과 잘 어우러지는 차분한 인테리어에 한참을 앉아 커피를 즐기고 싶은 분위기지만,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테이크아웃한 커피와 말먹이용 당근을 구매해 산책로로 향해본다.


아담하고 예쁜 호수 뒤로 키가 높은 숲길을 통과하자 귀여운 새끼말들이 방문객을 맞아준다.

전체 부지가 너무 깨끗하게 관리되 대게의 목장에서 느꼈던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말들도 어찌나 깨끗하고 털 결이 단정한지 기분 탓인진 몰라도, 부지가 넓어 말들도 답답하지 않고 평온해 보였다.

찬아 먹는 거 아니야;; 말 먹이야;;;
율아 말 약 올리는 거 아니야;;;;


제주에서 몇십 년을 살며 이곳저곳 가본 제주 현지 부모들은

주말에 아이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목장이나 관광지는 이미 한번씩 다 가보고 관광객으로 붐벼 잘 가지 않겠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생명들이 곁에서 일상으로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지금 나는 제주에 온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고,

도시에서 갑갑한 회사생활을 청산하고 온 상황이라

제주도의 좋은 면이 부각되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예쁜 건 예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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