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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May 14. 2024

美가 넘치는 이곳

JEJU..

주말인 오늘은 최고기온 29도. 아침 공기부터 미지근하다.

만일 당신이 이런 날, 아이와 여행 중이라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물놀이!'


9월에 퇴사를 하고, 퇴사 당일날 무리하여 야반도주하듯 제주살이를 떠난 이유는 하나였다.

그것 또한 '물놀이!!'


몇 년 사이 기후 변화로 인해 여름은 길어졌고, 9월 말까지 기온이 20도 후반대를 넘나들다

10월이 되는 순간 기온이 뚝! 떨어져 뒤늦게 가을로 급히 접어들고 있다.

사계절 중 가을을 가장 사랑하는 내겐 슬픈 일이지만, 물놀이를 사랑하는 아이들에겐 기쁜 일이리라.


이처럼 야외 물놀이를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시기가 9월 말을 분기로 나뉘다 보니

가능한 한 빨리 제주살이를 시작하고 싶었고,

그렇다고 9월인데 추석상여를 놓칠 순 없으니,

상여금 지급 기준인 9월 말까지 재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잔여연차를 영끌한 가장 마지막 근무일이 9월 14일이었다.


주변에서는 퇴사 당일날 이사 가는 것에 '미친 실행력'이라며 조롱 아닌 조롱을 하였지만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하루하루가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금 같은 시간이기에

우리의 추진력을 이해하리라.


지난 주말만 해도 준비 없이 함덕해변을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다가

아이들이 냅다 바다로 직행하는 바람에 알몸으로 집에 돌아오는 봉변을 당했다.

_[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깨고] 편 참고

그래서 오늘은 본격적으로 물놀이 준비를 해 바다로 나가보기로 한다.


제주는 섬이니까 당연히 여러 해변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중 우리의 첫 해수욕장으로 '협재'를 택했다.


사진이란 시간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남편은 총각시절 혼자 걷는 여행을 즐겨하여 제주 1인 여행을 온 적이 있었는데,

협재해수욕장을 지나다가 우연히 본 남자 꼬마아이들이 해변에 앉아 한가로이 모래놀이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다고 한다.

그 순간이 인상 깊어 사진으로 남겨두었었고, 자신도 자녀가 생기면 이곳에 데려오리라 마음먹었었단다.






협재에 도착하자 많은 인파로 주차장이 붐비고, 높은 온도와 무관하게 제주의 강풍이 격하게 우리를 맞아준다.

강도 높은 환영에 정신이 어지러움에도 아이들의 열정엔 영향이 없다.

도착과 동시에 입수한 아이들은 강풍으로 물에 젖은 몸의 체감온도가 떨어질 텐데도

이를 깨물어가며 최선을 다해 논다.

강풍도 그저 좋으심
미역 수거작업 중이신 미화원 찬
해변에 오면 한번은 해줘야하는 인어 꼬리 ART





아이들이 해수욕을 실컷 즐기었는지 제 발로 걸어 나온다.

그제야 추위가 한꺼번에 느껴지는지 이를 부딪혀가며 춥다고 난리이다.

해수욕장 폐장으로 샤워장이 없어 간단히 발 씻는 수도로 아이들 모레만 헹군다.


시장끼가 느껴진 우리는 계획해 둔 근처 맛집을 간다.

앞에 언급한 남편 홀로 걷기 여행 때 와보았던 분식당이었다.

이미 물놀이 직전 고등어구이 한 마리를 뚝딱한 아이들은

식당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을 빨며 여한 없는 물놀이의 여운을 식히고 있다.


물놀이로 기운을 다 빼 이제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같은 제주도 안이여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온 김에 카페까지 달려보기로 한다.

인근 카페를 검색하다 차분한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을 발견해 가본다.

카페 내부도 예쁘고, 커피 맛도 괜찮았지만 그 모든 걸 잊히게 할 정도로 외부 공간의 뷰가 인상적이었다.

카페 건물에 가려져 입구에선 보이지 않던 뒤편 외부 공간은 한낮의 해변과는 또 다른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낮의 강렬했던 태양은 물놀이 한결 부드러워진 아이들 같았고,

돌담을 따라 다닥다닥 놓여있는 색 바랜 하이얀 소라껍데기들이 앙증맞게 사랑스러웠다.

해수풀처럼 돌무리에 의해 고여있는 맑은 바닷물 위로 해님이 담기고

아이들은 아까의 물놀이는 금세 기억에서 사라졌는지, 물을 처음 보는 것처럼 호기심에 가득 차 달려간다.


나 또한 이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아이들 옷 젖을까 더 이상 여벌옷이 없다는 생각에 물에 들어가지는 않도록 주의를 준다.

꽁냥꽁냥 붙어다니며 서로가 서로에게 장난칠 용기를 불어일으켜 주는 두 형제
돌멩이에 소라에 호기심 충만한 율
혼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지 알 수 없는 찬

오늘은 어쩐지 글보다 사진이 많은 듯하다.

그만큼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이런 날들이 늘어날수록, 내 생각은 자꾸 한 곳으로 흘러간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섞여 같이 아름다워지고 싶다.

나 자체만으로 아름다워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곳에 아름답게 있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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