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씨 뿌리는 사람, 나도 그럴 수 있기를

by 냉이꽃


씨 뿌리는 사람을 유독 좋아한 화가들이 있다. 밀레와 반 고흐다. 성경의 비유가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그냥 생각해도 씨 뿌리는 농부는 그 자체로 신성하다. 저 작은 씨앗이 품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Les_Très_Riches_Heures_du_duc_de_Berry_octobre.jpg
Les_Très_Riches_Heures_du_duc_de_Berry_octobre.jpg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중에서, 1416년, 랭부르 형제 , 콩데 국립미술관 소장 ⓒ fr.wikipedia


중세의 씨 뿌리는 사람


씨 뿌리는 사람이 그림에 등장한 건 15세기다. 위의 그림은 1416년 네덜란드 화가 랭부르 형제가 그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불리는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 중 한 페이지다. 말을 탄 사람은 덜거덕거리며 새를 쫓고 있고, 농부는 호밀씨를 뿌리고 있다. 배경에는 루브르 궁이 있어서 베리 공작이 엄청난 권세를 지닌 왕족임을 보여준다.


당시 중세 유럽은 백년전쟁과 흑사병이 휩쓸고 있었다. 혼돈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삽화는 새로운 시대의 씨앗을 품고 있다. 천제의 움직임, 자연의 운행과 궤를 같이하는 농부의 일상이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르네상스의 예고였다. 자연과학적 지식을 그림에 반영하고 있으며, 영웅이나 신이 아니라 농부의 현실세계를 그렸고, 천체와 맞물려 돌아가는 일상의 숭고함에 눈을 뜬 것이다.


나에게도 깜깜한 시절이 있었다. 내 힘으로 살고 있고, 나의 현재와 미래도 내가 해결하고 극복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전부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씨앗을 건네주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무리 어두워도 이미 새벽은 오고 있었듯이 내가 모를지라도 어딘가에 씨앗을 뿌려지고 누군가는 밭을 갈고 물을 주고 있었다. 자연과학에 눈뜬 15세기 사람들처럼 나도 미지의 영역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혼자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살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각자의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거대한 연대가 있었다. 한강의 말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1688663911-1567609699305966-7a-bassano.jpg 씨 뿌리는 자의 비유_ 야코포 바시노_ 16세기 ⓒ 우피치 미술관


성경의 씨 뿌리는 사람


위의 그림은 성서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그린 것이다. 씨를 뿌리더라도 어디에 어떻게 뿌리는가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말씀이 마태복음 13장에 있었다.


첫 번째 길 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먹어 없앤다 했다. 그렇듯이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없어진다는 거다. 둘째,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곧 말라죽는다 했다. 생각해 보면 가슴이 뛸 만큼 좋은 말이었지만 뿌리가 없으면 내 것이 되지 않았다. 곧 사라지고 말았다. 셋째,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다. 좋은 말이지만 가시와 같은 걸림돌이 있으면 죽고 만다는 거다. 마지막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였다. 누구나 많은 결실을 맺고 싶지만 그건 좋은 땅이라야 되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 순리였다.



The Sower1850.png
de-zaaier-naar-millet-vincent-van-gogh-44549-copyright-kroller-muller-museum.jpg
The Sower_밀레_1850 ⓒ 보스턴 미술관 / 반 고흐_ 1882 ©크뢸러 뮐러 미술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


밀레가 그린 씨 뿌리는 사람(1850)은 살롱전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남루한 농부의 모습이 너무 당당하고 힘이 있으며 땅과 함께 위대하기까지 했다. 1882년, 빈센트 반 고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밀레의 그림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전기를 읽었다. 반 고흐는 감동했고, 농촌 생활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죽는 날까지 만난 적도 없는 밀레를 영원한 스승이자 정신적 아버지로 여기면서.


그는 밀레처럼 그림에 인생을 걸었고, 농부의 삶 속으로 들어갔고, 노동을 다른 무엇보다 아름답게 생각했으며, 밀레의 그림을 하나하나 따라 그리며 공부했다. 반 고흐가 모작한 밀레의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밀레의 그림은 무채색에 가깝다. 그러나 색채를 대신한 진정성이 있다. 반고흐의 그림에는 남부 프랑스의 햇살과 황금빛 들판이 살아 숨 쉰다. 그는 뭔가 간절하다.



1865_클라크미술관.jpg
default (13).jpg
밀레_1865 ⓒ 클라크 미술관 / 반 고흐_1888 © 반고흐미술관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반고흐는 성경의 비유보다는 밀레의 그림에 더 큰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밀레의 그림처럼 대지에서 당당하게 씨를 부리는 위대한 농부는 아니다. 그보다는 진실에 근접한 뭔가를, 그것이 뭐가 됐건 반 고흐의 눈에는 보였던 것 같다.


반 고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완벽함 앞에 압도되었다. 자연의 위대함을 표현할 수 없어서 무력감도 느꼈다. 그러나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씨 뿌리는 사람이나 밀짚단을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그림에는 태양이 산산이 부서지는 햇살이 되어 대지를 비춘다. 노랑에 흰색을 섞어서 그렇게 표현했다. 멀리 황금빛 밀밭은 풍요롭다. 햇빛이 떨어 자는 보라색 대지 위로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있다. 농부의 푸른 바지에도 흰색을 섞어 튀지 않고 자연에 동화된다. 그림은 밝으나 어딘지 우울하고, 생명을 염원하나 죽음의 그림자도 서려있다.


de-zaaier-vincent-van-gogh-44543-copyright-kroller-muller-museum.jpg 씨 뿌리는 사람_반고흐_1888 ⓒ 반 고흐 미술관


나는 인생을 뭐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일까? 뭔지는 모르지만 잘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은 의미가 있어야 하므로 의미를 찾았다. 그 의미는 타인의 칭찬과 인정으로 확인되었다. 이 생각이 인생을 무겁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시지프스의 바위 같은 짐이었다.

명상을 하면서 이 짐을 내려놓았다. 정확하게 나의 짐, 나의 의미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이기적 유전자를 공부하신 분들이 삶에 의미는 없다고 말하시면 너무 좋았다. 한 줌 흙이 되건, 한줄기 바람이 되건, 햇살 한 조각이 되건 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만으로도 귀하고 충분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삶이 좋다는데 왜 웃게 되는지 모르겠다.



The Harvest ,Vincent van Gogh (1853 - 1890), Arles, June 1888.jpg The Harves,t Arles, June 1888, 반고흐 ⓒ 네덜란드 고흐 미술관





keyword
이전 06화아르카익 미소, 좀 어색해도 좋아